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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주주자본주의 앞세운 경총의 노동이사제 반대는 시대착오적”

등록 2022-03-07 05:59수정 2022-03-07 10:56

인터뷰│박태주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노동이사 서울시 도입 6년만에 전 공기업 확대
노동자 경영주체 인정·주주자본주의 종식 의미
‘거수기 이사회’ 탈피…투명·민주성 개선 효과
국민 박수 받을만한 인상적 모범사례는 아직…

바이든 대통령도 “주주자본주의 끝내겠다” 약속
대립적 노사관계 변화 위해서도 노동이사 필요
파트너십 관계로 옮겨가는 ‘디딤돌’ 역할 기대
“경총은 노사갈등 부추겨 존재가치 확인” 쓴소리

노동이사는 전 직원 이해 대변·지속가능성 중시
전문역량 강화 위한 교육에 노조가 앞장서야
민간기업으로 확대 여부 공공부문 성과에 달려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한 인터뷰에서 노동이사제에 반대하는 경총 등 경제단체를 ‘시대착오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한 인터뷰에서 노동이사제에 반대하는 경총 등 경제단체를 ‘시대착오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전세계적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주주 자본주의에 맞지 않는다며 노동이사제를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상임위원은 지난달 25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대립·갈등적 노사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노동이사제가 필요하다”며 “경총은 노사 상생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노사 갈등을 부추겨 존재가치를 찾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노동이사제를 공공기관에 도입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경총을 중심으로 경제단체들이 강력 반대하자 쓴소리를 한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중에서 비상임이사를 선임해 이사회에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해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뿌리 깊은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독일·프랑스·스웨덴 등 19개국이 시행 중이다. 영국·이탈리아 등 12개 미시행국보다 많다.

박 전 상임위원은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노동자도 경영 주체임을 확인한 것”이라며 “경영권이 사용자의 독점적 권리가 아니고, 우리나라가 더는 주주 자본주의가 아님을 선언한 것으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또 “노동이사제가 거수기 이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긍정 평가하면서도 “국민 박수를 받을 만한 인상적인 모범사례는 아직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재계가 두려워하는 민간기업 확대 문제는 공공기관의 성과를 살펴본 뒤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 전 상임위원은 한국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산파역을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6년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때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세부 시행방안을 만들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전반기인 2017~2019년 경사노위 상임위원을 맡아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한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노동이사제가 서울시와 경기·부산 등 14개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에서 시행되다가, 오는 7월부터 13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으로 확대돼 큰 전환점을 맞는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노동자와 같은 이해당사자도 공기업의 경영 주체임을 확인한 것이다. 공기업 이사회는 주주가치의 극대화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해,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경제민주주의로 연결된다. 우리나라가 더는 주주 자본주의가 아님을 처음으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사용자들은 그동안 경영권이 자신들의 독점적 권한인 것처럼 주장했는데.

“노동이사제로 그 논리가 무력화됐다. 경영권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노동이사제의 취지로 공공기관의 공공성 강화와 투명경영이 꼽힌다. 서울시는 노사관계의 신뢰, 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 제도의 장점은 무엇인가?

“이사회를 이사회답게 만들어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한다. 이사회의 기능이 기업의 전략적인 의사결정과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시라면 노동이사는 거수기 이사회를 재편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나 경영진에 의해 선임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나 경영진에게 빚이 없다.”

―지난 6년간 지자체의 시행 결과를 종합평가한다면?

“공공기관별로 노동이사 1~2명만 참가하는 상황에서 ‘영웅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이사회를 이사회답게 하는 이른바 ‘메기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서울시 산하 공기업 이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영 투명성(67.3%)과 민주성(69.4%),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공익성(55.1%)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독일은 노동이사를 포함한 공동결정제가 회사 경영에 긍정적 역할을 한 모범사례가 많다. 우리도 그런 사례가 많이 나오면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럴 정도로 인상적이고 역동적인 사례는 없는 것 같다.”

― 경총 등은 제도를 처음 도입한 독일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인데 우리는 주주 자본주의라며 반대한다 .

“시대착오적이다.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으로 건너올까봐 미리 방어막을 치는 것이겠지만, 기업의 변화를 선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는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주주 자본주의는 이미 시효가 끝나고, 고객과 노동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주주 모두를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의 본거지인 미국에서도 애플 등 2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이 2019년 8월 주주 우선주의 시대는 시효가 다했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경제이슈를 주도하는 세계경제포럼(WEF)도 같은 해 기업의 목적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주주 자본주의를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경총만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낡은 가치에 매달려 있어 안타깝다. 경총은 노동이사제에 재를 뿌릴 게 아니라 정착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대립·갈등적 노사관계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동이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대립·갈등적 노사관계를 바꾸기 위해서도 노동이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총은 우리나라의 대립·갈등적 노사관계를 고려하면 노동이사제가 이사회를 노사 갈등의 장으로 변질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억측이다. 노사관계가 대립·갈등적이라면 그 이유 때문에라도 노동이사제가 필요하다. 노동이사제는 파트너십 노사관계로 이행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노조는 임금 및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이라는 분배 영역에 초점을 맞춰왔다. 반면 경영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이었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됨으로써 이런 낡은 이분법은 전복된다. 노동자도 생산·경영의 영역에 참여하면서 회사 발전의 공동책임자가 된다.”

―반대 이유 중에는 독일은 산별노조인데 우리는 기업별노조라는 것도 있다.

“현행 기업별노조 체제에서는 기업 내부에서 노조의 단체교섭, 노사협의회의 경영참여, 노동이사의 권한이 충돌할 수 있다. 독일은 노사 갈등적 이슈를 다루는 단체교섭을 산별교섭을 통해 기업 외부로 빼냈다. 대신 기업 내부는 노사 파트너십에 의한 협력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독일식 공동결정제의 핵심이다. 우리도 노동이사제의 성공적 정착과 노사 갈등 예방, 노사 파트너십의 정착을 위해 산별교섭 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경총의 태도를 보면 현재의 대립·갈등적 노사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경총이 실제 회원사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도움도 안 된다.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관계’이다. 노사가 어떻게 파트너십을 형성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경총은 노사 상생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노사 갈등 속에서 존재가치를 찾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 노조를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려 하고, 자본 우위의 노사관계를 만들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노동이사제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모두 찬성이다. 하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기업들이 민주노총에 지배를 당해서 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을 끼칠 수 있다고 반대했다.

“노동이사 한명이 열명 안팎의 이사회를 어떻게 지배하나?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악의적으로 차용해 노동이사제에 덧씌우려는 과장이자 고약한 행동이다. 객관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노조의 독립성 훼손이나 포섭 위험성, 기업별 파편화 등을 우려해 소극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노동이사가 있었다면 월성원전이 경제성 평가 조작으로 쉽게 문 닫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과장이다. 노동이사 한명이 반대한다고 가능했을까?”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대표이지만, 임원 신분이다. 노동이사는 노동자인가, 사용자인가?

“노동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사람이다. 노동이사가 다른 이사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굳이 따로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노동이사는 노동시간의 대부분을 직원으로서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임금을 받는다. 형식적으로는 사용자일 수 있지만, 본질적 정체성은 노동자다. ‘사용자의 옷을 걸친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재임 시절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했는데, 독일의 노동이사가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노조의 추천을 받은 노동이사는 노조의 대리인인가, 아닌가?

“아니다. 정부가 선임한 비상임이사라고 해서 정부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대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노동이사와 노조는 별개 기관이고 상호 독립적이다. 노조는 조합원의 이해를 우선으로 하지만, 노동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일할 의무가 있다. 전체 이해관계자의 관점에서 회사 발전을 도모할 책임을 진다. 노조와 노동이사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이사는 노조가 주요 권력자원이라는 점에서 노조와의 연계가 중요하다. 노동이사가 노조나 노동자와 유리되면 경영진에 포섭될 가능성이 커진다. 노조도 노동이사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연대가 필요하다. 노조도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해도 고려하고, 임금 중심의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경영의 주체로서 회사의 발전은 물론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을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조합주의’이다. 건강한 노조에서 건강한 노동이사가 나온다.”

―노동이사가 자신을 추천한 노조로부터 독립성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과반수 노조의 경우 노동이사를 추천할 수 있게 한 것은 잘못됐다. 전 직원의 투표로 선임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자체에서는 노동이사로 선임되면 임기(3년) 중에는 노조원 자격을 잃도록 한다. 공공기관운영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는데?

“국회에서 논의가 미흡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의 19개국 중에 노조원 자격을 박탈하거나 탈퇴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유럽이 산별노조 체제인 것과 달리 우리는 기업별노조 체제다. 노동이사의 임기 중에는 노조원 활동을 일시 정지하거나, 노조원 자격은 인정하되 조합 간부는 노동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서울시처럼 대형 공기업에는 노동이사를 복수로 두도록 하고, 국책은행이나 국책연구기관과 같은 ‘기타 공공기관’에도 도입해야 한다.”

―노동이사제가 성공하려면 노동이사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이사의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교육·훈련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도 노동이사의 정보·교육·전문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과 지원은 회사나 정부에 의존하기보다 노조가 담당해야 한다. 독일의 한스뵈클러재단이나 스웨덴의 피티케이(PTK)처럼 노조가 설립한 독립기관이 담당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나라가 노동이사제를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에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단체들은 의사결정 지연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원칙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민간기업도 현재의 거수기 이사회를 방치하면서 올바른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스지(ESG) 경영을 제대로 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변할 사람이 이사회에 있어야 한다. 유럽은 공기업만 도입한 나라도 있고, 공기업과 민간기업에 모두 도입한 나라도 있다. 우리가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공공부문의 성과를 살펴본 뒤 결정할 필요가 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민수빈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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