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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재정 안정·보장성 강화는 함께 갈 두 바퀴…공통분모 넓혀야”

등록 2022-03-21 09:06수정 2022-03-21 09:51

국민연금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
차기 정부 최우선 국정 현안으로 떠올라

재정의 지속가능성, 노후소득보장 강화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율에 성패 달려

“연금은 세대간 자원 배분 최적화 문제
미래불안 조장·세대 갈라치기 말고
생산적 토론 위해 공통의 전제 넓혀야”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 추세로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언스플래시 제공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 추세로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언스플래시 제공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면 미래세대는 수지불균형 문제와 초고령화 부담을 함께 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의 개혁인가’일 것이다. 연금개혁 논의의 핵심은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로 모아진다. 어떤 가입자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을 반길까? 연금 문제를 풀기 쉽지 않은 것은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같은 통계를 두고도 다른 해석, 다른 주장을 펼칠 때가 많다. 누가 언제 어떻게 책임과 부담을 나눠 질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러나 우리가 지체하는 사이, 빠른 속도의 저출산·고령화로 문제는 더 어려워지게 돼 있다. 차기 정부의 국정 현안 중 하나로 떠오른 연금개혁, 핵심 논점과 과제를 짚어봤다.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상이한 인식

연금개혁의 핵심 논점은 대략 세가지로 좁힐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 높은 노인빈곤율에 대응하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 그리고 연금 간의 형평성을 위한 연금통합이다. 국민연금 재정은 어떤 상태일까? 먼저 정부의 재정추계를 보자. 재정추계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향후 70년 동안의 국민연금 재정을 예측하고 제도 개혁안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2003년 시작해 지금까지 네차례 이뤄졌다. 지난 4차 재정추계(2018년)를 보면, 2042년부터 적자가 발생하고 2057년 적립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전망이 나와 있다. 재정 분석은 장래인구와 거시경제 등 변수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내년에 나올 5차 재정추계는 4차 때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출산율이 더 떨어지고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치면서 기금 고갈 전망은 2~3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의 재정분석으로는, 국민연금 재정은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기금은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바로 이 지점, ‘미래 지급가능성’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한다. 지난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주요국 고령화 실태 및 연금제도 비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일부 언론은 이 자료를 앞세워 2055년 기금 고갈 전망을 전하면서 “이대로라면 90년대생은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이런 ‘기금 고갈론’에 대해선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자료는 국민연금이 부실하니 ‘사적연금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끝을 맺는데, 결국 미래불안을 부추겨 이득을 보려는 ‘공포 마케팅’ 아니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수석을 지낸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최근 <한겨레>에 연재한 연금개혁 관련 기고에서 “2030세대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2057년 기금 고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 논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2020년 국민연금 적립금은 834조원인데 국내총생산(GDP)의 43.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보험료 없이 향후 25년간 연금지급이 가능한 규모이다. 기존 추계에 의하면 2035년에 연금기금은 지디피의 48.2%로 최고치를 기록한다. 하지만 투자수익이 예상외로 커지면서 2021년에 이미 지디피의 47%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되며 2035년에는 지디피의 50%를 훨씬 넘게 적립될 것이 분명해졌다. 최근 3년간의 막대한 투자수익으로 기금 고갈이 몇년은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금 고갈 시점은 연도의 차이만 있을 뿐 30여년 뒤로 예측된 것은 사실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정확히 얼마를 주기로 약속한 확정급여인데 그 액수가 2021년 9월 기준으로 2500조원이 넘는다”며 “실제로 920조원을 쌓아뒀더라도 1500조원 넘게 부족한 상태다. 그걸 두고 920조원이 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적으로 좋은 상황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평균수명이 늘어가면서 사망 시까지 받는 연금 총액도 늘어난다. 그만큼 연금 고갈이 빨라지고 또 그만큼 우리 자녀세대 부담이 늘어난다”고 했다. 양 교수는 “수명이 늘어나면 자동으로 연금액이 줄어드는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자동안정화 장치는 수급자 대비 가입자 비율과 인구구조 등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 조정하는 제도로,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이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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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선 재정안정에 치우친 연금개혁 방안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여기에는 국민연금의 기본 목적이 기금 규모의 유지가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에 있으며, 재정지속성은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목적 아래 고려돼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30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오종헌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이 실질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려면 현행 낮은 수준의 연금액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노후생계가 빈곤하지 않게 적정한 소득대체율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명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보고서인 ‘한눈에 보는 연금’(Pensions at a Glance 2021)을 근거로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선진국 중 꼴찌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20년 오이시디 회원국 의무가입 연금제도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51.8%인데 우리 국민연금은 31.2%로 오이시디 평균의 60% 수준”이라고 했다.

소득대체율 인상안 두고도 견해 갈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시민복지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오이시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소득대체율이 낮게 나온 것은 국민연금의 독특한 재분배 급여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오이시디의 한국 소득대체율은 하후상박 급여 구조, 짧은 의무가입기간, 기초연금 미포함 등으로 과소 추계되어 있다. 보고서를 단순 인용해 소득대체율 인상의 근거로 삼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김 교수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최근 <한겨레>에 실었다.

논쟁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앞서 보듯 연금개혁 논의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조율하는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적연금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만큼이나 견해차가 큰 이 두가지 논점을 각각 좁히는 게 관건이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보험료율은 소득 대비 보험료 비율이다. 쉽게 말해 가입자가 내는 돈이다.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이다. 급여 수준, 즉 ‘받는 돈’을 뜻한다. 현재 40%지만, 실제 가입기간은 40년에 못 미치기 때문에 실질 소득대체율은 이보다 낮다. 가입자가 완전고용·정규직·전일제 노동자라는 가정 아래 설계된 것이라 현재 노동시장에서는 일부만 이 조건을 충족한다.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누가 언제 어떻게 나눠 질 것인가의 문제

현행 보험료율은 직장가입자의 경우 9%이다. 1998년 이후 24년째 그대로다. 보험료율은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 첫해인 1988년 3%로 시작해 1993년 6%, 1998년 9%로 조정했고, 이후 계속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험료율은 독일(18.6%), 미국(12.4%), 일본(18.3%)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4차 재정추계를 보면, 현 수준의 소득대체율(40%)을 유지하려면 미래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은 기금이 소진되는 2057년 24.6%, 재정계산 최종 연도인 2088년엔 28.8%까지 오른다. 미래세대가 현세대에 비해 3~4배의 보험료를 부담한다는 분석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금은 인구절벽이라는 ‘정해진 미래’를 중심에 놓고 연금개혁을 구상해야 한다”며 “가입기간이 짧아 실질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도 사실이지만, 30여년 뒤 기금 고갈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보험료율을 가능한 한 빨리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 소득대체율은 70%에서 시작해 60%(1998년), 40%(2007년)로 낮아졌다. 적정한 소득대체율 설정을 주장하는 쪽은 이런 식으로 가면 노후소득 보장이 약화할 수밖에 없을뿐더러 소득대체율을 여기서 더 내리면 국민연금은 더 이상 연금으로 기능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연금개혁은 세대 간 자원 배분을 어떻게 최적화할지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보험료율에 손을 대는 것도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도 모두 예민한 문제다. 세대 갈라치기나 미래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합리적 논의를 방해할 뿐이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의 박선민 보좌관은 “재정의 지속가능성, 높은 노인빈곤율에 대응하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그 책임을 누가 언제 어떻게 나눠 질 것인지, 그래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금개혁, 불편하지만 더 미뤄선 안 돼

가장 최근에 나온 국민연금 개편 방안은 보건복지부가 2018년 12월 발표한 네가지 안이다. 1안과 2안은 현행유지안(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이고, 3안과 4안은 보험료율을 조금씩 올려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한 방안이다. 다시 말해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이다. 보험료율을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높이는 것을 전제로, 3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2031년 12%까지 인상하는 안이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보험료율을 2036년 13%로 한차례 더 인상하는 안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 기구인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연금특위는 이해관계자의 갈등과 견해 차이로 단일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정부는 개편안을 여러개로 만들어 국회가 결정하도록 공을 넘겼으나, 국회 역시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일이라 누구도 책임 있게 나서지 않은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연금통합 문제도 풀어야 할 난제다. 연금통합론에는 공무원연금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이 국민연금에 비해 너무 크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른바 형평성 문제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이번 대선 후보 시절 연금통합안을 제시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연금통합을 담은 연금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몇차례 개혁으로 공무원연금에 특혜는 거의 사라졌고 두 연금 간 보험료율 격차도 커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주장도 만만찮다. 보험료율은 국민연금이 9%(본인 4.5%, 사용주 4.5%)이지만 공무원연금은 18%(본인 9%, 국가 9%)이다.

연금개혁이 고차방정식인 이유는 바로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공통적인 분모를 끌어내고 관점의 차이를 좁히는 수밖엔 뾰족수는 없어 보인다. 연금개혁은 이제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도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임기 내에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긴 했으나,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박선민 보좌관은 “재정안정과 노후소득 보장은 함께 갈 두 바퀴이며,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도 담보될 수 있다”며 “생산적 토론을 위해 공통의 전제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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