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처음으로 재정 기조 변화의 뜻을 내비쳤다. 코로나19 대응에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약화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돌아본다는 취지다.
정부는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 지침’을 의결했다. 이 지침은 각 부처가 기획재정부에 오는 5월말까지 제출할 내년 예산 요구안을 작성할 때 활용되는 가이드라인 성격이다.
지침에는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뜻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예년의 지침에는 ‘적극적 재정 운용’이란 문구가 담겼으나 이번에는 ‘필요한 재정의 역할’이란 표현으로 대체됐다. 경상성장률을 웃도는 재정지출 증가율을 유지해왔던 문재인 정부가 내년 예산부터는 점진적으로 재정 확장의 폭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8.2%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첫 해인 2020년은 추가경정예산을 4번 편성하면서 재정지출 증가율이 무려 16%에 이르렀다.
지침을 보면, 경제 활성화나 취약계층 지원, 신기술 투자, 안보 역량 제고 등 필요한 부분에는 현 지출 수준을 유지하고, 코로나 대응 등을 위해 한시적으로 지원한 예산을 줄인다. 삭감 검토 사업으로는 방역지원 사업과 소상공인 긴급금융지원, 고용유지지원 사업 등이 꼽혔다. 앞서 기재부는 202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 3%, 국가채무비율 60% 유지를 법제화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2020년 말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다만 이번 지침은 새 정부 출범 이후 큰 폭의 변경 가능성이 있다. 실제 2023년도 예산은 현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가 편성하기 때문이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지난 25일 사전 브리핑에서 “지침은 새 정부 예산 편성 방향과 연계돼 있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실무 협의를 했다”며 “인수위가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4월 말이나 5월 초에 새 정부 정책 과제를 더 반영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 추가 보완지침을 각 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재정준칙 도입’을 공약한 바 있어, 재정 적자를 줄여 건전성을 강화라는 기조는 유지될 공산이 크다.
한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국방 예산을 크게 늘리는 동시에 증세를 제안하는 총 5조8천억달러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연 소득 1억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기존 소득세와 별도로 부유세(최저한세 20%)를 부과하는 방안이 담겼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을 37%에서 39.6%로, 법인세 최고세율도 21%에서 28%로 인상 올릴 계획도 내놨다. 코로나19로 크게 불어난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고소득층과 대법인을 상대로 증세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 편성의 최우선 기조로 ‘재정의 책임성(Responsibility)’이라고 제시했다. 책임성은 국내에선 통상 건전성으로 풀이한다.
미 매체 <뉴욕타임스>(NYT)는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과세 강화로 10년간 2조5천억달러 새로운 세입이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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