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기업결합 심사 건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1000건을 넘었다. 코로나19 이후 사업구조 재편이나 신사업 진출이 활발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근 몇년간 건수가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빅테크 기업들의 인수합병은 심사하기 까다로운 만큼, 인력 보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심사한 기업결합 동향을 분석해 30일 발표했다. 경쟁법에서 기업결합은 인수합병뿐 아니라 영업 양수, 임원 겸임 등 경영 의사결정이 통합되는 모든 결합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공정위는 일정 규모를 넘는 기업결합의 경우 독과점이 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분석하고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 우려가 크면 이를 완화하는 시정조치를 부과하거나 아예 불허할 수 있다.
지난해 공정위가 심사한 기업결합은 역대 최고치인 1113건이었다. 기업결합 심사 제도가 도입된 1981년 이후 처음으로 1000건을 넘었다. 865건을 심사한 2020년에 견줘서는 28.7% 늘었다. 불과 5년 전인 2016년 646건이었던 것에 견주면 차이가 크다. 금액은 210조2천억원에서 349조원으로 66.0% 증가했다. 공정위는 “신성장 분야 투자와 사업구조 재편 등이 활발했다”며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외국 기업의 기업결합도 다시 반등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사업과 관련된 기업결합이 두드러졌다. 피취득 회사를 기준으로 봤을 때 신재생에너지 발전업이 36건, 전기차 관련 사업이 12건이었다. 폐기물이나 하수 처리와 관련된 기업결합도 21건에 이르렀다. 의약(26건)과 반도체(13건)도 눈에 띄었다. 또 금융·건설·부동산개발과 관련된 사모투자합자회사(PEF)나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등 투자 목적의 합작회사 설립이 총 232건으로 전체의 20.8%를 차지했다.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의 인수합병 대다수는 집계에서 빠졌다. 이들 기업은 스타트업 수준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예 신고 대상이 아닌 탓이다. 카카오그룹이 지난해 공정위에 신고한 기업결합도 17건에 그쳤다. 기업결합의 개념과 다소 차이가 있긴 하나, 지난 9개월간 카카오그룹에 새로 편입된 계열사가 최소 40곳에 이르는 것과는 대비된다.
심사기준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재차 제기된 배경이다. 공정위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달 초 플랫폼 기업들에 적합한 심사기준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기존의 점유율 집계 방식으로는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특히 플랫폼 기업들은 인접한 사업 영역에 계속해서 진출하면서 빅데이터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 기준으로는 제재가 어렵다. 실제로 온라인 플랫폼과 관련된 기업결합의 경우, 지난해 신고된 34건 중 19건이
혼합결합이었다.
공정위는 인력 보강도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기업결합 건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탓이다. 디지털 분야의 기업결합을 심사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중요하다는 문제도 있다. 기업결합 심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은 전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의 리나 칸 위원장도 최근
<시엔비시>(CNBC) 인터뷰에서 “전체 기업결합의 규모는 두 배가 됐는데 (인력) 자원은 그대로인 상황”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심사 방식 개선도 추진한다. 현재 공정위는 심사관이 시정조치를 만들면 이를 심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경쟁당국이 문제점을 제시하면 기업이 직접 시정 방안을 설계해 당국과 협의하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심사관이 이행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직접 시정조치를 설계해야 하는 만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신용희 공정위 기업결합과장은 “공정거래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향후 개정안 발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