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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미·유럽은 횡재세·억만장자세 검토…윤석열 인수위는 감세 몰두

등록 2022-04-04 20:34수정 2022-04-05 02:42

해외 주요국 코로나·인플레 지출 보완책
영국, 유가 폭등에 에너지기업 증세 검토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실시한 뒤 연장 중
미국은 1억달러 고소득자에 최저한세 추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재정 수지가 크게 악화된 미국와 유럽 주요국들이 재정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거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횡재세’(windfall tax)나 ‘억만장자세’(billionaire minimum income tax) 등의 이름이 붙은 세금이다. 이런 제도 도입에 대해 일부에선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꺾는다며 반발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재정 적자를 줄이고 취약 계층을 향한 안정적 재정 지원을 위해선 불가피한 조처라는 시각도 적잖다.

이런 풍경은 정권 교체기를 맞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재정 건전성 확보’는 강조하지만 그 수단으로 지출 삭감에만 쏠려 있는 분위기다. 재정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또다른 수단인 증세나 보험료 인상은 커녕 감세 목소리만 윤 당선자나 인수위에서 나온다. 감세와 병행하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대대적인 지출 삭감이 불가피해 경기 충격은 물론 양극화 심화라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4일 <비비시>(BBC) 등 외신을 보면, 유럽연합 주요국들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거둔 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검토 중이다. 영국 노동당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급상승한 원유 가격에 따라 북해산원유(WTI)를 생산하는 에너지 기업들을 상대로 법인세율을 10%포인트 올리자고 주장했다. 보수당 정권인 영국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꺾는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으나 영국 여론은 우호적이다. 영국은 이미 이달 들어 연소득 9800파운드(약 1600만원) 이상 소득자에게 사회보험료 요율을 1.25%포인트 인상했다. 코로나19 유행기 동안 보건 관련 건강보험 지출이 크게 늘면서 악화한 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조처다. 영국은 지난 1997년 고든 브라운 정권(노동당) 당시 1980년대 보수당 정권 아래에서 공기업들이 헐값에 민영화된 점에 주목해 횡재세를 해당 기업들로부터 걷은 바 있다. 횡재세가 20여년만에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한 발 빨리 횡재세를 도입한 나라도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는 일찌감치 에너지값 급등으로 수익이 크게 늘어난 에너지기업을 상대로 법인세를 추가로 걷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전량 국외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에너지값 급등에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다. 지난 2월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전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가계의 연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에너지 수입 과정에서 붙는 관세를 일괄 면제하는 11조원 상당의 대규모 조세지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지원으로 악화한 재정 수지를 에너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로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부자에 대한 소득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미 정부는 최근 의회에 제출한 ‘2023년 예산안’에 이른바 억만장자세 구상을 담았다. 연 1억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에게 ‘최저한세 20%’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현재 과세 대상이 아닌 주식, 채권 등의 미실현 소득(평가 이익)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예를 들어 보유 주식을 팔지 않더라도 평가액을 기준으로 사실상의 ‘주식 보유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게이브리얼 주크먼 버클리대 교수(경제학)가 미국 10대 부자에 부과될 억만장자세 추정치. 출처: 주크먼 교수 트위터
게이브리얼 주크먼 버클리대 교수(경제학)가 미국 10대 부자에 부과될 억만장자세 추정치. 출처: 주크먼 교수 트위터

미 백악관은 지난 10년간 미국의 400대 부자 가구의 실질 세부담인 평균 실효세율이 8.2%(미실현 소득 포함해 추산)에 머물렀다고 지난해 공개한 바 있다. 미 정부의 계획에 대해 게이브리얼 주크먼 버클리대 교수(경제학)는 자신의 트위터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미국의 10대 부호만 따져도 10년간 총 2150억달러의 세금을 거둘 수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초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는 이유는 재정 수지가 그만큼 악화됐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예산안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유행기 동안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방비 증액이 필요하다”면서도 “2023년 예산 편성의 최우선 목표는 재정의 지속성과 안정성”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재정 지출은 유지하거나 늘리더라도 재정 수지 악화에 대비해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 견줘 국정 과제를 선별 중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행보는 방향이 다르다. “재정은 한국 경제의 최후의 보루”(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같이 재정 건전성 회복을 강조하면서도 증세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외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시절 내놓은 공약은 감세에 쏠려 있다. 대주주의 주식 매매 차익에 부과하는 양도소득세를 전면 폐지하고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 완화가 그 예다. 인수위에선 이런 감세 공약의 속도 조절이나 재검토에 대한 목소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감세 공약이 현실화되고 동시에 재정 건전성 조처가 병행될 경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큰 폭으로 줄 우려가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어 취약계층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동시에 그만큼 재정 건전성을 고민해야 한다”며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등 공약을 이행하려면 그만큼 재원 확충을 위한 대책도 함께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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