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기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위원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7년 5월10일 첫 출근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1호는 일자리위원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6일 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일자리위원회 설치령에 서명하고, 그날로 부위원장을 임명했다. 일자리수석비서관을 신설해 위원회의 간사위원을 맡기고, 선임인 일자리기획비서관으로 하여금 지원조직인 일자리기획단장을 맡게 했다. 대통령비서실 수석과 비서관이 직접 참여하는 위원회는 일자리위원회가 유일했다.
다수의 정부 종합대책을 국무회의나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의결하지 않고 위원회에서 입안하고 의결까지 한 것도 문재인 정부 일자리위원회가 처음이다.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2017년 10월) 등 일자리위원회가 그동안 의결한 범부처정책은 모두 71건에 이른다.
그 위원회가 5월15일로 문을 닫는다. 윤석열 당선자가 이끄는 새 정부에서는 일자리수석도 사라진다.
“일자리 문제는 부처를 뛰어넘어 통합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어디에서 맡든 , 그 일을 멈춰선 안 됩니다 .”
2020년 2월부터 세번째 부위원장을 맡아 정권 임기 말까지 위원회를 이끈 김용기 부위원장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장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자리 문제를 개선할 수 없고 양극화만 더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일자리위원회의 일은 고용노동부가 하는 일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고용노동부가 고용과 노동 사무를 관장한다면, 일자리위는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질 개선을 목표로 한다고 대통령령에 명시돼 있습니다.”
―왜 그런 위원회를 만들 생각을 한 것인가요?
“기업의 고용창출 여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경제사회시스템을 고용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통합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2018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이시디 일자리전략’을 발표하고 일자리에 대한 각국 정부의 통합적 접근(a Whole of Government Approach)을 추천했는데, 한국의 일자리위원회와 일자리수석이 바로 그 선도적 모델이었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문제의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0억원 재화 생산 시 유발되는 일자리 개수인 취업유발계수가 외환위기 당시 30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사용을 늘리고, 중소기업은 수익 하락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성장만을 중심에 둔 사고로는 일자리 부족과 일자리 질의 저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 명백했습니다. 그리고 각 부처가 자기 고유 업무만 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기에 통합적 접근에 나선 것입니다.”
―일자리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
“본회의 위원은 30명인데요, 기획재정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9개 부처 장관과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 대통령 일자리수석 등 15명의 정부 쪽 당연직 위원과, 민간 출신 부위원장, 한국노총, 민주노총, 중기중앙회, 경총, 대한상의, 비정규직 관련 단체의 민간 위촉직과 민간 전문가 7명이 위원입니다. 지역일자리특위 등 18개의 부문별 회의체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조직 구성뿐 아니라, 하는 일도 다른 위원회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습니다.
“자문기구에 가까운 다른 위원회와 달리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2017.10) ‘후반기 일자리정책 추진방향’(2020.3) 등의 정부 종합대책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을 점검했습니다. 특히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의 경우 정부의 지원조직인 ‘상생형 지역일자리 지원센터’가 위원회의 하부조직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협업예산사업인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을 주관했습니다. 저의 경우, 부처 조정 업무를 하면서 정부 종합대책 40여건을 만들어 일자리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11개 분과위원회 회의를 250여차례 이끌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습니다.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는데, 좋은 이미지로 남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상황판이 그대로 설치돼 있고, 인터넷에 다 공개도 되고 있습니다만 이런저런 가짜 뉴스가 많았습니다. 정권 2년차 2018년에 일자리 창출이 미흡했던 때가 있었고, 개선되자 또 코로나 대유행이 상황을 어렵게 했습니다. 새 정부 5년간 125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확실한 개선을 이뤘지만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또 지표는 개선됐어도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지표와 체감 사이의 갭도 있었습니다.”
―고용 관련 지표가 양적 질적 측면에서 모두 개선됐다는 얘기인가요?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과 코로나 위기 전인 2019년, 그리고 2021년과 올해 3월, 이렇게 네 시기의 고용지표를 비교해보면, 올해 3월 15살 이상 고용률이 61.4%로 모든 시기에 견줘 개선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령대별로 봐도,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고용률이 상승했습니다. 40대만 77.8%로 2016년 79.2%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40대 남성 고용률은 92%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과거 94%까지 오른 적도 있지만, 워낙 높은 상태에서 자동화의 타격, 자영업의 퇴조 등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임금근로자 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만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2016년 23.5%였는데 2020년에는 16%로 줄었습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에 비해 300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의 비율은 같은 기간 37.4%에서 44.5%로 상승했습니다. 살인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노동시간은 감소했습니다.”
―일자리 증가가 재정을 투입한 노인 일자리 사업에 크게 힘입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
“노인 고용률이 큰 폭 상승했지만, 다른 연령대의 고용률도 상승한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1997년부터 시작돼 박근혜 정부 때는 연평균 취업자가 50만명가량, 코로나 충격이 지속된 2021년에는 80만개 좀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분들은 평균 연령이 74.5살입니다. 차상위 계층이 참여할 수 있는데, 복지가 떠안아야 할 책무를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분들은 소득도 얻고, 건강이 개선돼서 한해 의료비가 7천억원가량 감소합니다. 한해 일자리 예산 30조원 가운데 약 2조원을 투입해서 거두는 큰 성과입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애썼는데 성과는 어떻습니까 ?
“문재인 정부는 우선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사회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돌봄, 요양 등의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공무원은 17만4천명 늘리는 것이었는데 안전과 소방 등의 부문에 집중돼 있습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112긴급신고 현장출동시간이 정권 출범 전보다 55초 짧아졌고, 연간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10% 이상 줄었습니다. 구급차 3인 탑승률은 31.7%에서 86.1%로 높아졌습니다.”
―대규모 재정투입을 한 것에 비춰보면 청년 고용 사정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대학진학률이 높고, 남자는 병역을 치러야 하니까 외국에 비해 고용률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과거 정부는 인턴 고용 확대, 해외 취업 알선 등 정책을 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자리 외 주거 등 청년문제 전반을 포괄한 종합대책을 펼쳤습니다. 올해 3월 청년(15~29살) 고용률은 46.3%로 역대 최고입니다. 체감실업률은 정부 출범 초 25%에서 이제 2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청년들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친 것 아닌가요 ?
“교육부에서 2월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연말에, 이듬해 6월에 어디에 취업해 있느냐를 추적해 통계를 내고 있습니다. 그걸 보니 대졸자를 뽑는 대기업의 신규 채용 비중이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경쟁도 격화됐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구직활동 지원금을 중심으로 과감한 청년 고용 지원책을 폈습니다.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고, 선순환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에 좋은 인재가 들어가야 혁신 역량이 커지고 생산성이 증가할 테니까요. 현재 청년 취업자 390만명 가운데 청년추가고용장려금(46만명)과 청년내일채움공제(48만명) 수혜자가 24%에 이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들어간 청년들은 임금 격차가 줄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은 좋은 일자리의 비중 자체가 매우 낮아서 , 청년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에는 구조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
“250인 이상 사업장 취업자 비중이 우리나라는 27%가량으로 스웨덴(61.1%)이나 독일(61.8%)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43.1%)에 크게 못 미칩니다. 대기업의 수가 적습니다. 전체 2700만개 일자리 중 대기업 정규직과 공공부문 정규직 등 월 보수 409만원 이상의 일자리는 490만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서비스업에서도 고숙련 일자리가 적습니다.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없이 5년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김용기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위원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통합적 접근이란 이를테면 어떤 것입니까?
“정부는 연구개발(R&D) 투자와 원천기술 개발, 민간기업 창업과 스케일업을 위한 금융 등의 지원, 새로운 시장 형성을 위한 규제와 정부 조달을 통한 구매 등 신산업 발달을 위한 전단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혁신적인 기술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중간 수준의 기술 개발은 자동화를 통한 노동의 대체로 생산성은 그대로 둔 채 일자리만 없앨 수 있습니다. 정부 국정 전반에 일자리 중심적 사고가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소차, 전기차는 새로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이 큰 미래산업이죠. 그런데 생산비가 비싸니까 보조금을 지급해야 육성이 가능합니다. 충전소라는 인프라도 필요하고요. 경쟁이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연구개발 지원도 필요할 것입니다. 최적의 공장 입지를 확보하려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도 필요합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차량을 사줘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일자리 사업의 대부분은 이러한 민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었습니다.”
―현대차에서 위탁받아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는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라고 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 이곳을 비롯해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과거 정부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정책입니다 .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협력 모델이었습니다 . 문재인 정부에서 투자유치에 성공해 , 생산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 2019년 이후 중앙 및 지방정부가 협력해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지정하고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경남 밀양의 뿌리산업 (주물 , 주조 , 금형 ), 강원도의 초소형 전기차 등 지역의 노사민정이 상생협약을 체결해 지역별 특화모델로 유망사업을 발굴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입니다 . 그동안 12개 상생협약이 체결됐습니다 . 51조원을 투자해 직접고용 1만개 , 간접고용을 포함해 13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 아니냐, 규제를 풀어 민간활력을 제고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성장하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생각만으로는 ‘고용 없는 성장’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일자리는 교육과 직업훈련, 산업 정책, 예산과 세제, 연구개발, 금융 등 정부 내 많은 영역이 긴밀히 협력해서 풀어가야 합니다. 중앙정부와 지역과의 협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의 일자리위원회 기능을 기획재정부나 경제수석실에서 이어받으면 좋겠습니다.”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