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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여가시간 총량 ‘남>여’…남성만 시간부자인 이유 뭘까?

등록 2022-05-07 09:05수정 2022-05-07 09:47

[한겨레S] 이원재의 경제코드ㅣ여가시간 불평등
여가 증가 세계적 추세에도…한국, 2004년 대비 줄어
가사부담 적은 남성일수록, 북유럽·영미권 국가 넉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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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제코드에서 분석할 주제는 ‘여가시간’이다. 우리는 쉬기 위해서 버는 것일까, 아니면 벌기 위해서 쉬는 것일까? 어쩌면 이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르는 기준이다.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인생이란 열심히 일해서 무언가를 생산하며 먹고사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생산을 좀 더 잘하기 위해 여가시간을 갖고 ‘재충전’을 한다.

반면 선진국 국민들에게 인생이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여가시간에 하는 것인데, 그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노동을 하며 돈을 벌어둔다. 그렇게 따지면 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이다. 또한 독특한 자원이다. 돈과 비교하면 그렇다.

출발부터 불평등한 돈과 시간

돈은 시작부터 불평등하다. 부자는 돈이 많다. 가난한 자는 돈이 없다. 가진 사람은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가상자산으로 옮겨다니며 시장에서 부를 점점 더 키운다. 못 가진 사람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가진 돈을 소모하고 다시 먹거리를 구하러 시장에 나선다. 시간은 시작부터 평등하다. 세계 최고의 부자에게도 가장 가난한 이에게도 똑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진다. 돈을 쌓아둔 사람이라도 시간을 쌓아두지는 못하고, 돈이 없는 사람이라도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는 있다. 그 시간을 잘 사용하면 돈 부자 부럽지 않은 ‘시간 부자’로 살 수도 있다.

모든 시간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지는 않는다. 돈벌이를 하거나 가족을 돌보면서 보내야 하는 ‘의무시간’은 우리의 여가시간을 압박한다. 물론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으로 노동시간은 줄고 여가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골고루 그 여가시간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다.

첫째, 나라별 격차가 있다. 핀란드·노르웨이·벨기에처럼 북부 유럽 복지국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여가시간을 누린다. 미국·영국·일본 등의 국가는 상대적으로 여가시간이 적다. 우리나라 여가시간은 더 적다. 주요국 중에서는 중국과 인도 정도만 우리보다 여가시간이 적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가시간은 오히려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통계청 생활시간조사 결과, 2004년 하루 평균 5시간9분이던 19살 이상 성인의 여가시간은 2019년 4시간50분으로 줄었다.

둘째, 성별 격차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남성의 여가시간이 여성보다 길다. 여성이 무급 가사·돌봄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산업현장의 노동시간을 빠르게 줄인다. 하지만 가사 및 돌봄 시간은 그만큼 빨리 줄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부모라면, 회사 안 간다고 쉬는 날은 아니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아이가 없다 해도, 식구들 밥도 해 먹여야 하고 청소와 빨래도 해야 한다. 장애인이나 어르신이 있다면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무급 가사·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몰린다면, 여가시간 총량이 늘어나더라도 성별 격차는 커질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전히 이런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영미권 남성은 여성보다 일평균 여가시간이 40분 많고, 독일 남성은 30분 많으며, 스웨덴 남성은 32분 많다. 한국은 이들 국가와 비슷해서, 남성의 여가시간이 여성보다 28분 많다. 남유럽과 인도는 남녀의 여가시간 격차가 매우 크다. 이탈리아는 여성의 여가시간이 남성보다 1시간25분 적고, 스페인은 1시간3분 적으며, 인도는 1시간2분 적다. 반면 노르웨이와 뉴질랜드에서는 남녀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국가 간 격차, 성별 격차는 복지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복지 규모가 크고 보편성이 높은 국가일수록 여가시간 총량이 많다. 또한 가족에게 먼저 부양 책임을 지우는 국가일수록 여가시간 성별 격차가 크고, 국가가 개인을 직접 책임지는 국가일수록 성별 격차가 작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경우 가족 중심 선별복지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데, 여가시간 성별 격차가 크다. 북유럽 국가들은 개인 중심 보편복지제도가 중심인데,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

물론 관행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복지제도는 ‘남성은 바깥일, 여성은 집안일’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아직 복지국가가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인도의 경우도 문화가 격차의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제도와 관행이 맞물려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2004년 이후 주 5일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토요일에는 출근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이를 계기로 전체 유급노동시간은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체 유급노동시간이 줄어드는 속도는 느리다. 복지가 부족해서다. 실업급여,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의 복지제도는 이제 막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해서 집 한 채라도 마련해두지 않으면 실업자나 노인이 되었을 때 패가망신한다는 공포가 여전히 지배하는 사회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좀 더 일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또한 김대중 정부 이후 모든 정부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펼쳤다. 고학력 여성도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유급노동시간은 상대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가사·돌봄 노동 푸대접하는 나라

무급 가사·돌봄 노동의 남녀 불균형은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다. 하지만 여성의 유급노동시간이 늘어나는 만큼의 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는 못하다. 요약하면 이렇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남성은 장시간노동 탓에, 여성은 긴 가사·돌봄 시간 탓에 여가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최근 여성들은 공부도, 취업도 더 많이 하는데 가사·돌봄 시간도 크게 줄지 않으니 여가시간이 더욱 부족해진다.

여가시간을 분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계청에서 하는 생활시간조사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조사는 24시간을 모두 시간표처럼 기입하는 조사라, 사람들의 무급 가사·돌봄 노동시간까지도 알 수 있다. 요일별 변화도 볼 수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생활시간조사를 5년에 한번밖에 하지 않는다. 매달 유급노동을 조사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와 대조적이다. 일터에서 겪는 노동문제에는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고 정책 대응도 하지만, 무급 가사·돌봄 노동 중 겪는 문제에는 정책적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코로나19 이후 가족 내 돌봄 시간은 극적으로 변화했을 텐데, 이를 파악할 데이터는 2025년까지 기다려야 나온다. 우리가 가사·돌봄 노동을 얼마나 푸대접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연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연구활동가. 다음세대 정책싱크탱크 ‘LAB2050’ 대표. <소득의 미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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