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에스케이(SK)하이닉스 본사. 연합뉴스
“(오리온의) 이사회에 기후와 관련된 불충분한 공개에 책임을 묻고 있다.”(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BCI)
“(에스케이(SK)하이닉스) 이사회에 여성이 부족하고 의미 있는 기간 내에 성별 다양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명확한 약속(목표 포함)이 없어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한다. 이사회의 성 다양성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한다.”(캐나다 온타리오교직원연금·OTTP)
“(케이씨씨·KCC) 이사회의 불충분한 성 다양성으로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한다.”(미국 플로리다연기금·SBA)
외국 연기금들이 올해 국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이사 후보의 독립성이나 불법 행위 등에 따른 반대에서 나아가 기후변화 대응이나 이사회 다양성 등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 투자자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실제 의결권 행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9일 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제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와 아이에스에스(ISS) 등은 올해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기후변화 관련 공시와 이사회 다양성 강화 등을 추가했다. 온실가스 배출량(GHG) 감축 목표 등에 대한 공시가 부족하거나 이사회 구성에서 성별과 인종·민족적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반대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박진하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빠르게 성장하는 이에스지 추세를 반영해 환경, 사회 문제에 대한 개정 사항이 추가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는 오리온, 일진머티리얼즈, 팬오션 등에 기후변화 관련 공시 미흡을 이유로 이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는 지난 2월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기업 10곳에 탄소배출 감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삼성전자 등이 기후변화 대응에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소극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삼성전자가 애플, 티에스엠시(TSMC) 등에 비해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이고, 이는 투자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어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휴대전화·반도체 등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과 베트남에서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구매에 한계가 있는 측면도 있다”며 “‘아르이100(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을 포함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다양성과 관련해선 플로리다연기금이 교보증권, 대한해운, 케이씨씨(KCC), 메리츠금융그룹 등의 이사 후보 선출에 반대표를 던졌다. 온타리오교직원연금도 에스케이(SK)하이닉스에 같은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오는 8월5일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이사 전원을 특정 성으로만 구성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관련 법령이 개정된 데다 국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면서 이사회 구성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김선민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해외 연기금이 이에스지 관련 이슈를 제기하거나 개선 방안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업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증권사 분석가는 “기후변화나 이사회 다양성 등의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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