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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2022년 5월26일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신임 이창용 총재가 주재한 첫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부터 다섯 차례 금리를 올렸지만 물가상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창용 총재는 2022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2.5%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고 시사했다.

정부의 대규모 현금지원에 물가상승 우려

기준금리 인상 사흘 뒤인 5월2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6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 제출안 규모(59조4천억원)보다 2조6천억원이 늘어났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에게 지급할 손실보상·보전금을 확대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일부 수용했기 때문이다. 손실보전금은 5월30일 오후부터 지급됐다. 이같은 대규모 현금지원이 물가상승을 자극한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그럼 추경을 안 하나. 영세자영업자는 숨이 넘어간다”고 말했다.

물가를 자극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소상공인 지원이 ‘시각을 다투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은 6·1 지방선거 때문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편성한 코로나19 대응 추경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수조원씩 불어난 바 있다. 통화정책을 펴는 한국은행은 물가 급등을 우려해 금리 인상을 거듭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재정을 풀어 물가를 자극하는 상반된 행보를 해왔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이제 2024년 총선까지 향후 2년간 대형 정치 이벤트는 없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국회의 추경 심의 과정에서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거나 경제쇼크로 대량실업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올해 추경을 더 편성할 생각이 없다. 추경 요건에 명실상부하게 부합하지 않으면 추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더 이상 ‘폭탄돌리기’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정부는 ‘폭탄’이 터지지 않게 관리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같은 달에 견줘 5% 이상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5%대 상승률은 2008년 9월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향후 몇 달간 5%대 상승률이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5월26일 “현재 상황에서는 경기침체 우려보다는 물가 상방 위험이 더 크다. 연말쯤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곡물 가격 상승이 지속돼, 2023년에도 상당 기간 4%대 상승률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억제가 발등의 불이 된 정부도 추경 통과 다음날인 5월30일 돼지고기·식용유·밀가루 등 7개 식품원료의 관세를 연말까지 없애는 물가 안정 대책을 내놨다.

코로나19 감염 터널을 지나는 동안 저물가·저금리 상황은 단숨에 고물가·고금리 국면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부채가 위험하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 가계 이자 부담은 3조원 이상, 기업 이자 부담도 2조7천억원 늘어난다. 금리 인상은 고물가에 직격탄을 맞은 서민에게 이자폭탄을 떠안기는 것이어서 고통은 이중 삼중으로 더해지게 됐다. 한국은행이 경제·금융 전문가 80명을 설문조사해 5월30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1년 이내에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단기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높다’고 대답한 비중이 26.9%였다. 6개월 전 응답(12.5%)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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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잡으려다 경기 잡는다?

물가를 잡으려다 자칫 경기만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던 2022년 4월 국내 생산·소비·투자는 오히려 전달보다 하락했다. 세 지표의 동반 하락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 2월 이후 26개월 만이다. 향후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개월째 내리막길이다.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조달비용 상승이 지속되면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도 타격을 입는다. 산업연구원은 5월3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무역적자가 158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무역수지 적자는 2008년 이후 없었다.

주요 연구기관들이 제시하는 2022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5~2.8% 수준이다. 물가상승률 예상치(4~4.5%)보다 낮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우리 경제가 공급비용 상승 충격이 유발하는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에 이미 진입한 상태”라며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므로 정부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홍우형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은 소규모 경제 특성상 투자가 꾸준히 이뤄지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투자 위축 등으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적절한 금리 상승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미국도 경기침체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을 받고 2022년 들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다. 연준은 5월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데 이어, 최소한 두 차례 빅스텝을 더 밟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0.75~1%인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말까지 2.75~3%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1965년 이후 연준의 통화긴축은 11차례 있었고 이 가운데 8차례에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5월16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호적인 시나리오에서도 경기는 둔화하고 1~2년간 성장률이 낮고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빅스텝 밟은 연준, 두 차례 더 밟을 수도

반면 물가와 임금이 연쇄 상승하는 현상이 아직 확산되지 않고 금융시장이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을 미리 반영해 대출금리를 올리는 등 긴축 대응을 하고 있어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이 크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김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5월30일 낸 보고서에서 “미국 고용과 소비가 견고하고 기준금리 인상도 3%대에서 일단락될 것으로 보여 심각한 경기 하강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역시 물가상승 압력으로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지만 연준 대비 속도는 더딜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