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성장 등 한국경제 전반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등은 내년부터 국내 물가가 안정을 되찾으리라 예상하지만, 물가 급등세가 지속하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표적이다. 이 기구는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내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122달러로 올해 평균(107달러)에 견줘 14%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유가가 내년 초 배럴당 133달러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물가 상승을 계속 이끌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의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8%로 올해(4.8%)보다 소폭 둔화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이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이 내년에 2%대 물가 상승을 점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당장 국내 석유류 가격은 국제유가 급등 여파로 정부의 유류세 인하 효과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정부는 지난달 1일부터 휘발유·경유 등에 붙는 유류세 인하 폭을 종전 20%에서 30%로 확대해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이달 11일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한 주 전보다 2% 오르며 리터당 2060원을 돌파했다.
특히 에너지·먹거리 가격이 뛰며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1∼3월 국내 소득 하위 20% 가구의 가처분소득(세금·보험료 등을 빼고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에서 식비 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에 달했다. 식비 지출 비중이 소득 상위 20%의 3배가 넘는다.
오이시디 등 국제기구가 “가난한 사람들은 저축이나 재량 지출을 줄여서 식품·에너지 쪽 지출 증가를 상쇄하기 어렵다”면서 한국 정부에 취약계층 지원 확대를 권고하는 이유다. 반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다음달 초부터 기초생활 수급자 등 저소득층 227만가구에 지급할 선불카드 방식의 긴급 생활지원금은 가구당 평균 44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오이시디는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등으로 유가발 물가 상승이 내년에도 계속될 거라 보지만, 이런 시각이 일반적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경기 전망도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낳은 공급 충격과 세계적인 물가 상승이 각국의 정책 금리 인상 속도를 앞당겨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도 지난 4월 생산·소비·투자 등 3대 산업 지표가 2년 2개월 만에 일제히 하락하며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향후 경기 상황을 예고하는 통계청의 경기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 연속 내리며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출입이 경제(국내총생산)의 70%를 차지하는 한국 특성상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경제 부처의 전직 고위 관료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섰지만, 당시엔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에 힘입어 그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경제도 올해 4%대 성장이 예상되는 등 경기 위축을 겪는 터라 이런 수혜를 기대할 수 없다.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에선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미시간대 조사)가 50.2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물가 급등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며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도 꽁꽁 얼어붙은 셈이다. 한국의 지난해 대중국, 대미국 수출액 비중은 40%에 이른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