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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국 소득, 일본 추월 ‘역사적 사건’…영국 제친 아일랜드는 축제도”

등록 2022-06-29 05:00수정 2022-06-30 19:20

박현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이근 서울대 석좌교수

한국, 2년 전 PPP기준 소득 일본 추월 ‘경제사적 사건’
중국 전통 제조업은 한국 추격중, 디지털은 이미 추월
미·중 경제규모 20~30년간 엇비슷, G2 시대 길어질 듯

경제안보는 강대국 프레임, 한국은 경제-안보 분리 유리
미국에 공장 짓는 대신 대중국 사업 불간섭 약속 받고
독일·호주·동남아 등과 함께 다자주의 회복 목소리 내야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가 23일 오전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가 23일 오전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세계경제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동맹·우방국들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 간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 같은 나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근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는 현재 세계경제 혼돈의 근저에는 미·중의 경제력 대결이 있으며, 여기서 온갖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중의 경제규모가 2030년대 중반에 비슷해져 20~30년간 앞서거나 뒤서거니 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 사이에 협력이 아니라 지금처럼 대립적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계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벌써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이 힘을 합해 다자주의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이 석좌교수는 후발국이 선발국을 따라잡는 이른바 ‘경제추격론’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무엇이 국가 간 경제적 흥망성쇠를 결정짓는지 열쇠를 푸는 연구작업에 평생을 매진해왔다. 특히, 그는 기술 사이클이 짧은 산업일수록 추격이 용이하며, 암묵적 노하우가 높은 산업일수록 추격이 어렵다는 점을 국가·산업·기업 차원의 특허자료를 이용한 실증 분석으로 밝혀냈다. 이런 공로로 비서구권 대학교수로는 처음으로 2014년 국제슘페터학회가 주는 슘페터상을 수상했다. 서울대는 탁월한 학문적 업적으로 국제적 명성이 있는 교수를 석좌교수로 선정하는데, 2021년 여기에 포함됐다. 2021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이 석좌교수를 지난 2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나, 주요국간 경제추격 현황과 한국이 어떻게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지 들었다.

―한-일, 한-중, 미-중 간에 기업·산업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제력을 놓고 쫓고 쫓기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오셨는데요. 먼저 경제추격론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죠.

“경제 추격에서 추격이라는 말은 선발자와 후발자 간에 격차를 줄이는 걸 뜻합니다. ‘3추’라고 하는데요, 추격·추월·추락 세 가지를 말합니다. 추격은 격차를 좁히는 과정이고, 넘어서면 추월이고, 반대로 격차가 더 벌어지면 추락입니다.”

―추격에 필요한 핵심적인 건 뭔가요?

“저는 ‘추격만 해서는 추격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추격의 역설입니다. 여기서 앞의 추격은 모방을 의미하는데, 모방만 해서는 선진국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선진국한테서 배우지만, 나중에는 선진국과 다른 걸 해서 혁신을 해야만 추격을 넘어 추월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산업은, 그 기반이 되는 기술의 특성으로 구분할 때 사이클이 짧은 단주기와 사이클이 긴 장주기 기술 산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보기술(IT) 산업 같은 것은 빨리빨리 변합니다. 기술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선발자가 갖고 있는 기술이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후발자가 새 기술을 가지고 벼락치기 식으로 따라갈 수 있다는 말이죠. 한국이 아이티를 갖고 빨리 추격을 한 것이죠. 그런데 선진국의 진짜 강점은 사이클이 긴 바이오라든가 소부장(부품·소재·장비) 같은 산업을 꽉 잡고 있다는 겁이다.”

―우리의 경우 단주기 산업은 따라잡았고, 장주기 산업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나요?

“지금 가고 있죠. 바이오 같은 경우 이미 진입을 했고, 코로나 덕분에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진입장벽이 높아서 한국 걸 쓸 수가 없는 산업이었는데, 급하니까 한국산 진단키트를 가져다가 쓴 거죠.”

―우리나라가 2017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습니다만, 미국에 견줘서는 아직도 많이 낮습니다. 어느 정도 추격을 했나요?

“물가 수준을 고려한 구매력 평가 환율(PPP)을 적용해서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우리가 2018~19년께 미국 대비 70%를 넘어섰어요. 이 수준이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와 비슷해요. 우리가 서구 열강이 된 거예요. 독일은 미국 대비 90%로 우리보다 앞서 있고요.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가 2020년께부터 추월했어요. 한국이 72% 정도 되고, 일본은 최근 70%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이죠. 식민지 당했던 나라가 식민지 지배를 한 나라를 넘어선 세번째 사례입니다. 19세기에 미국이 영국을, 그리고 몇년 전 아일랜드가 영국을 넘어섰죠. 아일랜드는 영국을 넘어섰다고 축제도 했어요. 일본도 여기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일본은 여전히 원천 기술력이나 소부장 산업 경쟁력에서 우리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소부장 산업은 사이클이 긴 산업이라서 추격이 어렵고, 추격하는 데 오래 걸리죠. 사이클이 짧은 산업은 빨리 추격이 되고 사이클이 길수록 추격이 늦어지는 추격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의 강점이 축적된 지식 숙련과 장인 정신인데, 이것은 아날로그 기술이거든요. 계속 아날로그 기술이 지배했으면 한국이 일본을 못 넘어섰을 겁니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것은 그냥 칩 하나 넣으면 똑같은 성능이 나오는 거예요. 일본의 축적된 숙련이 갑자기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온 거죠. 디지털 혁명이 없었으면 삼성이 소니를 못 넘어섰을 거예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파괴적 혁신이 추격과 추월을 가속화시킨 거죠. 일본은 자기의 강점인 아날로그 기술에 더 집착하고 디지털로 갈아타는 데 10년을 지체했어요. 한국은 먼저 디지털로 가버린 거죠. 이런 기회의 창을 후발국이 먼저 선점해서 활용하면 그때부터 추월이 시작되는 거죠.”

―그 시기가 2000년대 초반쯤이죠?

“데이터 기술이 본격화 된 건 2000년대부터니까 그때부터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는 발판을 잡았고 1인당 소득은 20년 뒤에 넘어섰습니다. 이미 1990년대 말에 미국에 출원한 특허 수로 볼 때 삼성이 소니를 앞섰고, 매출액이나 기업가치는 2005~6년께 넘어섭니다. 기술력으로 먼저 추월한 다음에 시장 추격이 나중에 발생하죠. 그리고 기업 차원의 추격이 먼저, 국가 차원에서는 나중에 발생하죠.”

―한국은 이제 중국에게 추격당하는 처지인데, 중국이 어느 정도까지 추격해 왔습니까?

“한-일 간에 벌어진 것처럼 사이클이 짧은 휴대전화나 디스플레이 같은 것들은 중국이 한국과 거의 대등해졌습니다. 자동차라든가 소부장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런데 자동차의 경우 중국은 가솔린엔진 차를 건너뛰고 전기차로 추월하고 있습니다. 가솔린 차는 어차피 진 거니까 포기해버리고 전기차로 비약해버린 거죠. 이것도 후발자의 중요한 전략이에요. 전기차가 출현하지 않았으면 중국은 계속 자동차에서 뒤쫓아 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또한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같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한국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전통 제조업에서는 한국을 아직 추격하고 있는 반면에 신흥 디지털 산업에서는 한국을 추월해서 미국과 맞짱 뜨고 있는 상황이죠.”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가 23일 오전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가 23일 오전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중국이 경제력에서 미국을 언제 추월할지는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사입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1인당 국민소득과 경제규모 두 가지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1인당 소득(PPP 기준)은 중국이 미국 대비 30%에 도달했거든요. 이 지표가 40%가 되면 고소득국,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에 40%에 도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요. 중국은 제 추산으로는 지금까지의 발전 추세를 단순 연장한다면 2030년대 중반에 40%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규모(경상GDP 기준)는 과거의 5년 추세를 연장하면 2030년대 중반께 미국과 비슷해집니다. 그런데 중국이 급속한 추월을 한다기보다는 미국과 경제규모가 비슷한 상태로 한 20~30년간 갈 것 같아요. 그리고 2050년쯤 되면 다시 미국 경제규모가 중국보다 커진다고 봐요. 왜냐하면 중국은 고령화가 심한 반면에 미국은 이민 유입으로 인구 구성이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계경제가 앞으로 상당기간 G2 시대로 갈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두 나라가 계속 싸우고 그러면 이건 세계경제에 재앙입니다. 지금 벌써 세계경제가 불황, 공황처럼 되는 것은 바로 미·중이 계속 싸우고 그러니까 거기서 온갖 문제가 터지는 거라고 봅니다. 한국 같은 통상을 해서 먹고 사는 나라에는 굉장히 좋지 않은 환경이죠.”

―지금 말씀하신 건 기존 발전 추세를 그대로 지속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 몇년 새 미국의 기술 수출제한,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중국 정부의 민간 기업 경영 개입 강화 등의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했는데, 이런 변수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맞습니다. 이런 예측에 영향을 주는 첫 번째 변수는 선진 기술에 대한 접근성입니다. 중진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산업구조가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그 핵심이 혁신을 통해 로엔드(낮은 기술 단계) 산업에서 하이엔드(높은 기술 단계) 산업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한국은 서방 국가로부터 기술을 받아들이고 그걸 응용해서 경제를 업그레이드 했는데, 이런 기술 접근이 막히면 중국의 업그레이드가 지체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업그레이드는 로엔드 산업을 해외로 보내고 국내는 하이엔드로 특화하는 겁니다. 저급 생산 공장을 해외로 보내고 국내에서는 연구개발이나 마케팅에 집중하는 거죠. 중국의 일대일로가 바로 이건데, 이 프로젝트도 지금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근본적인 리스크는 정치 민주화 함정입니다.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핵심은 결국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화되는 과정인데, 한국은 OECD에 가입하기 전에 민주화했잖아요. 1987년부터 한국은 어떤 면에서 민주화를 하고 선진국 클럽에 들어간 거란 말이죠. 지금 중국의 소득수준이 바로 한국이 민주화를 하던 시기거든요. 중국이 그걸 안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민주화 없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 아직 그런 사례가 없어요. 중국이 서방식의 자유민주의의를 꼭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대안으로 중국식 민주주의의 어떤 길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아직 안 보인단 말이죠. 오히려 지금 중국 사람들이 민주주의적 요소로 자부심을 가졌던 집단지도체제와 격대지정(차기 아닌 차차기 지도자를 미리 지정) 전통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국이 민주화를 어떻게 할지가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입니다. 미중 갈등이 중국의 민주화 과정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어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전하는 데는 권위주의 모델로도 가능한데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때는 힘들다고 보시는 건가요?

“중국의 어떤 창조성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중국이 그것까지 보여준다면 세계사적인 새로운 발전 경로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중국은 중산층의 민주화 요구도 첨단 감시 기술을 활용해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민주화 요구를 통제하면서 경제를 계속 발전시키는 모델이 가능할까요?

“중국의 경제적 성과의 핵심이 디지털 산업과 벤처기업입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같은 이들을 견제하는 것은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적 재산권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혁신적 경영활동의 자유로움이 없어지면 경제 역동성도 영향을 받습니다. 제로 코로나 정책도 권위주의적 접근법의 상징입니다. 지금 어떤 함정에 빠져 있는 거죠. 중국 정부도 그걸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통제를 조금 풀려는 움직임도 보이더라고요. 그야말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반도체는 미-중간 기술패권 경쟁의 ‘초크 포인트’(choke point, 전략적 관문)로 불립니다. 미국이 관련 기술의 수출 통제를 하고 있는데요. 중국이 독자적으로 반도체 굴기를 할 수 있을까요?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둘로 나뉘잖아요. 메모리는 단기간에 추격이 어려워요. 후발자의 추격 전략은 로엔드로 진입해서 실력을 쌓은 다음에 하이엔드로 가는 것인데, 메모리는 로엔드·하이엔드 시장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유에스비(USB)를 예로 들면, 신제품이 용량이 커지면서도 가격도 싸지잖아요. 구세대 제품은 다 없어져버리고요. 메모리가 그런 거예요. 후발자가 로엔드로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후발자가 추격이 어려운 산업입니다. 그럼, 한국은 어떻게 일본을 앞섰느냐. 그건 한국이 차세대 제품을 먼저 만들어 점프(비약)를 한 거죠. 중국이 한국처럼 차세대 제품을 한·일보다 먼저 만들려면 혼자 못 하거든요. 외부의 기술, 특히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같은 장비나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되는데,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네덜란드가, 소프트웨어는 미국이 잡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에 대한 접근이 없으면 메모리는 당분간 추격이 어렵다고 봅니다.

비메모리 시스템 반도체는 좀 다른 시장이에요. 굉장히 다양한 세그멘트(영역)가 있습니다. 자동차용 반도체 같은 것은 구세대 기술입니다. 이것은 지금 중국 기업이 엄청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벌면서 기술을 축적하면 결국은 시스템 반도체는 중국이 쫓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메모리도 서방국가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다른 경로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요. 중국의 기초과학이 강하고 시장이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중국의 반도체 추격은 단기간에는 불가능하고 더 지체가 되지만은 중국을 완벽하게 추격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때려준 것이 한국 제조업한테는 한 5년 정도 시간을 벌어준 거예요. 한국한테 일종의 축복의 시간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모든 것이 ‘메이드 인 차이나’로 가는 경로지요.”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가 23일 오전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가 23일 오전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전략적 경제·기술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천명했습니다. 반도체 등 핵심·신흥 기술을 보호하고 진흥하기 위한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G2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미국 쪽으로 기우는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술혁신 측면에선 기회일 수 있으나, 최대 시장인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활로를 모색해야 할까요?

“무역 파트너로서는 중국 시장이 제일 큰 반면에 기술은 미국 같은 서방 국가에 의존하는 이런 이중 구조가 문제잖아요. 한국이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먹히는 것이지 새로운 제품을 못 만들면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도 보장이 안 되거든요. 기술 없이 시장도 없다는 말이죠. 그런 면에서 저는 서방 국가의 기술에 대한 접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국의 서방 국가 기술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한테는 한국이 어떤 창구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 한국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현 정부는 경제안보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안보를 공급망 회복력이나 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통상정책이나 대외정책 기조로 내세우면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 프레임에 말려들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안보는 강대국이 쓰는 개념이죠. 우리 같은 통상국가는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는 게 맞습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 때처럼 미국 기술이 들어간 상품은 중국에 팔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개입이죠. 저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왔을 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미국에 공장 짓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 선물을 주는 대신에 한국의 대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어야 합니다. 서로 주고받기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아이피이에프는 한·중·일과 대만 등 동북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첨단산업 분업구조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원대한 기획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의도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과 무역에 큰 충격이 불가피한데요, 어떤 전략으로 협상에 임해야 할까요?

“IPEF는 기존의 자유무역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이건 소수 동맹 간에 글로벌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또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다자주의 세계화가 깨지면서 통상 패러다임이 소수 동맹형 흐름으로 바뀌고 있는데 그걸 상징하는 거라고 봅니다. 한국은 다자주의도 중요하고 소수 동맹형에도 끼어들어야 되겠죠. CPTPP에도 가입해 두 가지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미중 경제·기술패권 경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이해관계와 능력이 유사한 ‘중견 강국’들과 연대 외교를 통해 미중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적절한 방안이죠. 강대국의 경제적인 압박 같은 걸로부터 자유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자기들의 힘을 남용하는 거잖아요. 중견국들이 힘을 합해, 미·중이 싸우지 말고 세계경제를 위해서 협력하라고 자꾸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경제 전체가 다 같이 망하는 길로 갑니다. 미국 내에서도 중국 때리는 것이 진짜 잘한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인플레의 근본 원인이 결국 미·중의 갈등에서 시작한 것이거든요. 미국이 중국에 관세 때리니까 미국 소비자물가 높아지고요. 반도체라는 게 모든 산업에 들어가는데 반도체 수출 통제하니까 제품 가격이 올라가고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다자주의와 룰(규칙)을 다시 회복하자는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합니다. 독일, 호주, 동남아 이런 곳들과 한국이 협력해서 제3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다들 필요성을 알고 있으나 미국과 중국 눈치 보고 있는 것 아닌가요?

“독일이나 프랑스, 동남아 등도 중국과 교류가 많거든요. 영국도 브렉시트 이후에 유럽에서 떨어져 나와서 불안해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자주의와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만들자는 주장이 먹힐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가겠다고 말은 하는데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후발자적인 행태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이제는 미·중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만한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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