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왼쪽 스크린)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최태원(오른쪽) SK그룹 회장과 화상 면담을 하고 있다. 워싱터/로이터 연합뉴스
에스케이(SK)그룹이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미국에 220억 달러(29조원)를 더 투자한다.
미국을 방문중인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은 26일 오후(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면담을 하며 미국에 220억 달러를 더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투자액 가운데 150억 달러(약 20조원)는 반도체 분야에 쓰인다. 미국 대학을 선정해 반도체 연구개발(R&D)협력을 하고, 메모리반도체 패키징(집적회로 소자 포장) 제조 시설을 짓기로 했다. 패키징 공장을 지을 장소와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또 첨단 소형모듈원전(SMR) 분야에 50억 달러를 신규 투자한다. 에스케이㈜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미국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협력(MOU)을 체결하고 소형모듈원전 기반의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바이오 분야에도 20억 달러를 투자한다.
에스케이 쪽은 최근 발표한 7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분야 투자를 포함하면 총 대미 투자액은 290억달러(약 38조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워싱턴디시를 방문해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2030년까지 미국에 52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며, 이 중 절반 가량을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백악관 회의실에서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과 함께 화상을 통해 집무실의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했다. 최 회장은 면담에서 “한·미 양국은 21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할 기술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핵심 기술과 관련한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한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일행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미국 대통령 공식 트위터 갈무리
바이든 대통령은 에스케이 쪽의 투자 약속에 “역사적 발표”라며 극찬을 쏟아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건 대단한 일”, “정말로 중대한 일” 등의 표현을 연발했다. 그는 “이런 혁신적 발표는 미국과 한국과 그 동맹들이 돌아왔고, 21세기 경쟁에서 이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며 “미국 일자리를 4천개에서 2만개까지 늘려줄 것”이라고 했다. 또 최 회장을 미국식 이름 ‘토니’로 부르면서 “다음에 오면 오벌오피스에서 나와 점심을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면담을 마치면서는 “생큐”를 3번 외쳤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창가에 서서 먼발치의 백악관 뜰에 있는 최 회장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최 회장과 바이든 대통령의 면담은 막바지에 일정이 조율된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 최 회장의 이번 방미는 2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디시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에 맞춰 열리는 ‘추모의 벽’ 준공식 참석이 주된 목적이었다. 추모의 벽은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과 한국인들의 이름을 원형 모양의 벽에 새기는 프로젝트로, 지난해 최 회장이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추모의벽 준공식 참석과 현지 사업장 방문 등이 주요 일정이었는데 백악관 면담은 막바지에 조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지난 5월 공식 방한 때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는 그가 중점을 두는 반도체 등의 생산시설 유치와 일자리 증가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상원은 이날 반도체 산업 대규모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2800억 달러(262조9200억원) 규모의 ‘칩과 과학 법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이 법안은 미국 내 반도체 시설 투자에 520억 달러의 보조금과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다.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