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부동산 중개업소의 아파트 매물정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공인중개사무소들은 오후 5시가 되자 하나둘 사무실 불을 껐다. 30여곳의 중개소 중 대여섯 곳은 입구에 ‘휴가 중’ 등의 안내문을 붙인 채 며칠째 휴무였고, 나머지도 평소보다 일찍 파장 준비를 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예년에는 2학기 개학을 앞둔 7월께 전세·매매거래가 몰려 휴가도 미루고 계약을 치렀다. 올해는 6월부터 문의 자체가 사라져 출근 않고 쉬는 중개사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주택 손바뀜이 급감한 가운데 강남권 시장도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1000채 이상 대단지 아파트 중에도 수개월 째 매매거래 건수가 제로(0)인 곳이 흔한 상황이다. 다만 집주인이 수억원씩 몸값을 낮춰 1∼2년 전 시세로 매물을 ‘던지는’ 경우는 아직 드물었다. ‘버티기 장세’가 지속되는 강남 부동산시장을 <한겨레>가 취재했다.
4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을 보면, 지난달 강남·서초구에서 신고된 아파트 매매계약은 53건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 월 100건을 밑돌았다. 405건이 거래됐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거래량이 4분의 1토막 났다. 한산해진 분위기는 지역별 ‘대장주’로 꼽히는 대단지들에도 뚜렷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2444채)·‘반포자이’(3410채),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1608채),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1320채) 등에서 지난달부터 한 건의 매매거래도 신고되지 않았다. 대치동 칠성공인중개소 대표는 “은마아파트에서는 6월부터 매매거래가 전혀 없었다. ‘일정 가격 이하의 매물이 나오면 사겠다’는 대기 수요도 끊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단지에서는 매매 경색이 ‘호가 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어진지 20년 이상 된 구축 아파트나 재건축 추진 단지 위주로 시세가 내리는 모습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전용면적 63㎡·27평 기준)의 경우 올 초까지 최고 34억원을 호가했지만, 지난달 30억7000만원에 거래된 뒤 최근에는 30억∼32억원에 매물로 나온다. 양재천변의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미도아파트와 개포동 경남아파트 등에서도 전용 120㎡(40평)대 기준 연초 고점 대비 1억원 정도 낮은 가격에 매물이 출회되고 있다. 개포동 개포공인중개소 대표는 “지난 연말까지는 ‘똘똘한 한채’ 선호 기조 속에서 서울 외곽·수도권 아파트를 팔고 강남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가 있었다. 하지만 올 들어 외곽 집값이 강남보다 먼저 떨어지면서 ‘갈아타기’ 매수가 끊겼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1∼2년 동안의 상승분을 반납할 만큼의 ‘대세 하락’은 아직까지 없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강남·서초구 단지들의 매매 호가는 대체로 올 초 고점과 비슷하거나 소폭 떨어진, 지난 연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하철 3호선 역세권이나 한강변 등 이른바 ‘노른자위’의 20년 연식 이내 아파트에선 시세가 유지되거나 신고점을 갈아치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135㎡(52평)는 지난 6월 역대 최고가인 55억9000만원에 거래된 뒤, 지금은 57억원 정도에 매물로 나와 있다. 강남구 도곡동 ‘렉슬’ 전용 84㎡(33평) 역시 지난달 역대 두 번째 높은 가격인 31억5000만원에 팔린 이후, 최근에도 비슷한 호가에 나온다.
통계상으로도 강남·서초구 매매시세는 서울 다른 지역보다 오래 ‘버티는’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매매가격지수 통계를 보면,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가지수는 올 1월부터 지난달 마지막주까지 0.4% 하락했다. 반면 서초구와 강남구는 같은 기간 각각 0.7%, 0.3% 상승했다. 특히 서초구의 경우 지난 3월 셋째주부터 19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다가 지난주 보합으로 돌아섰다. 반포동 가든공인중개소 대표는 “기존에도 시세가 높았던 반포 인근에선 (자기자본 없이) 큰 대출을 끼고 집을 샀던 집주인이 드물었다. 대출금리 인상 등의 충격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거래절벽이 연말 이후까지 길어질 경우 강남권 집값도 본격적으로 조정될 것으로 내다본다. 수요자들의 매수 심리가 전국적으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강남만 ‘활황기 호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금은 실거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호가만 높아지며 시세가 유지되는 듯한 착시를 줄 수 있다”며 “강남에서도 매물이 많이 나오는 대단지를 중심으로 급매물 한두건이 거래되며 시세가 빠르게 빠질 수 있다”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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