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21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총재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새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 직전에 “노동소득분배율 관련 자영업자의 ‘혼합소득’ 1975년~2009년 소급분 추정자료를 6월중에 공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불과 석달만인 지난 6월 돌연 “당분간 이 통계를 공표하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국가 통계생산기관인 한은이 통계 공표주기와 일정을 뒤집은 건 조직 설립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소득불평등 지표와 관련해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의심이 드는 석연찮은 일”이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노동소득분배율은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자본(법인기업) 이외에 총노동(임금노동자 피용자보수+자영업자의 노동소득분)이 가져가는 몫으로, 이 분배율을 엄밀하게 측정하거나 국제비교연구를 하는데 꼭 필요한 통계자료가 이른바 ‘자영업자 혼합소득’ 추계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6월4일, 한은은 국민계정체제 기준연도를 개편하면서 혼합소득을 처음 보고·공표했다. 부문별 소득계정의 ‘가계(소유) 비법인기업’(즉 자영업자) 영업잉여 중에서 혼합소득이 차지하는 규모(연간)를 공식통계로 작성해, 소득재분배정책 효과분석에 활용할 수 있도록 소득분배지표 통계 제공을 확대한 것이다.
자영업자가 경제활동으로 창출한 소득은 자신이 스스로를 고용한 성격의 노동소득과 자기가 소유하거나 임차한 매장의 설비·자본을 투자한 기업가 측면의 자본소득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이 둘을 따로 분리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아 두 소득을 포괄하는 ‘혼합소득’으로 측정하는데, 현재 2010~2020년치 혼합소득 추계 데이터가 한은경제통계시스템(ECOS)에 편제·수록돼 있다. 2020년의 경우 ‘가계 영업잉여’(95조6004억원) 중에서 혼합소득은 49조2654억원으로 추계돼 있다. 논란이 된 통계자료는 2010년 이전(1975~2009년)까지 더 끌어올려 확장한 혼합소득 장기시계열 데이터다.
앞서 3월18일 한은은 한은통계포럼(‘노동소득분배율 지표 개선을 위한 세미나’) 보도자료에서 “새로 개발된 노동소득분배율 보조지표는 혼합소득 소급분(1975~2009년)과 함께 3월말까지 시산 후 6월중 공표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자영업자 혼합소득을 새롭게 반영한 이른바 ‘보정 노동소득분배지표’를 발표하고, 이 지표 산출에 활용한 자영업자 혼합소득 소급추계분(1975~2009년치)을 일반에 공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석달만인 지난 6월16일, 한은은 느닷없이 보도자료를 내어 “새로운 노동소득분배율 지표 및 혼합소득 소급분(1975~2009년)은 당분간 공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로는 “혼합소득 추계치, 혼합소득 중 노동소득으로 간주할 수 있는 비중에 따라 노동소득분배율 지표가 민감하게 변화하고 이 비중에 대한 학계 등의 컨센서스가 아직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통계자료의 생산 주기와 공표 날짜 약속을 어기거나 지키지 못한 건 설립(1950년)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16일 “한은 내부팀에서 2년 가까이 고생해가며 혼합소득 1975년~2009년치 추계를 이미 마쳐 자료를 구축해뒀는데도, 정권이 바뀌면서 갑자기 당분간 발표하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3월 당시에 이미 생산돼 있던 혼합소득 소급분 통계자료를, 석달이나 지난 뒤(6월·인수위 활동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 공표하겠다고 한 점도 이제 돌아보니 석연찮다”고 말했다. 당시 인수위 경제분과는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신성환 교수(신임 한은 금융통화위원)가, 당선인 경제정책특보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맡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소급분 자료까지 있어야 개별 연구자들이 소득분배의 장기 추세를 관측하고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분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의 ‘당분간 공표 중단’ 발표를 두고 두달이 지난 요즘에 재차 논란이 되는 사정은 최근 한은 내부적으로 보정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해본 결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표하지 않은 1975년 이후의 혼합소득 장기데이터를 활용해 한은 내부적으로 측정해보니 보정노동소득분배율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높아져 1990년대 중반에 80% 수준까지 오른 뒤 다시 15년 가까이 추세적으로 낮아졌고, 2010년(약 67%)부터 조금씩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보정노동소득분배율(약 70%)은 아직 90년대 중후반(약 75~80%)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한은은 혼합소득에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적절하게 분리·포착해 노동소득분배율에 반영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학계의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한은 안팎에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동소득을 분리 반영하는 여러 방법 중에 개별 연구자가 한 가지를 택하고 그 방식에 따라 소득분배율 장기 추세나 국제비교연구를 통해 분배정책 시사점을 도출하면 되는 것”이라며, “보정노동소득분배율지표를 자체 계산해 발표하라고 한은한테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혼합소득 소급분 통계를 공표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네덜란드 등 대다수 유럽국가는 자국 혼합소득 통계를 오이시디에 보고하고 있다. 사실 한은은 3년 전에 혼합소득 자료제공을 시작할 때 “소득분배에 대한 사회적 수요 증가, 주요국의 공표 현황 등을 감안해 혼합소득을 별도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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