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잭슨홀 회의 발언을 하루 앞둔 25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왼쪽)가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6일(현지시각)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정책심포지엄에서 8분짜리 짧은 연설을 했다. 시장은 이 가운데 “단 한 번의 월간 (물가지표) 개선만으로는 물가상승률이 내려갔다고 확신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는 대목에 가장 주목했다. 파월의 이런 매파(긴축적 통화정책 선호) 본색에 뉴욕 3대 증시는 일제히 3%대 급락하는 ‘검은 금요일’을 보내며 거래를 마쳤다. 파월 연설 이후 글로벌 달러 초강세(이른바 ‘킹 달러’)가 더 가속화하고 더 오래될 거라는 전망이 퍼지고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상승(원화 가치 약세)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까지 수출과 물가, 경상수지 등 한국 경제 전반에도 부담이 커질 우려가 나온다.
당장 9월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상폭에 대해 파월은 “전적으로 새롭게 나오는 (8월 물가·고용 등) 데이터를 확인한 뒤 판단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6·7월에 이어 9월에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연방기금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지, 아니면 정책금리 인상 속도를 조금 늦춰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취할지에 대해 거의 힌트를 주지 않은 것으로 해석했다. 파월은 다만 “7월 당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 결정 직후에 연 설명회 때 ‘9월에도 다시 한번 이례적으로 높은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내가 말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은행인 아이엔지(ING)의 수석 금리전략가 앙투안 부베는 “파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연준의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파월 의장의 이날 연설은 역대 연준 의장의 잭슨홀 미팅 연설 가운데 이례적으로 짧았고 절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시엔비시>(CNBC)와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여러 투자 분석·전략가들은 파월의 발언을 두고 “분명하고 충분히 매파적이었다. 연준 금리정책에 단기적인 방향 전환이 있을 거라는 시장 전망을 차단했다”(금융서비스업체 BNY멜론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제이크 졸리 선임 투자전략가), “물가 안정 범위에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을 계속하리라는 것을 시사했다”(LPL 파이낸셜의 퀸시 크로스비 수석 글로벌전략가), “파월이 금리 인상을 끝내고,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 거라고 언급했다”(온라인트레이딩 중개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연준 펀드 선물시장이 2023년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는데 연준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미국 투자관리회사 윌밍턴 트러스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루크 틸리) 등의 반응을 보였다.
지난 한 주동안 시장은 잭슨홀에서 나올 파월의 발언에 온통 쏠려 있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6월 9.1%에서 7월 8.5%로, 연준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더욱 중시하는 또다른 물가지표인 7월 개인소비지출(PCE) 디플레이터도 6월 6.8%에서 7월 6.3%로 각각 둔화하며 안도감을 줬는데, 이런 ‘물가 상황 변화’에 따라 파월이 통화정책 방향 전환(내년 상반기 금리 동결·인하)을 의미하는 한마디를 던져줄지 모른다고 촉각을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파월은 공세적인 금리인상 기조를 한층 더 명확하게 제시했다. “멈추거나 쉬어갈 지점이 아니다”는 파월의 발언은 내년 상반기 금리 방향 전환에 베팅했던 시장을 침묵시켰다. 7월 미국 물가 데이터가 인플레이션 진정세 혹은 정점 통과 기대를 낳고 있지만 파월은 “단 한 번의 월간 (물가지표) 개선만으로는 물가상승률이 내려갔다고 확신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고 평가했다. 정점은 통과했을지 몰라도 낮은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아가지는 않고 높은 물가 수준이 오래 유지될 거라는 말로 시장은 해석한다.
지난해 미국 인플레이션율은 6월부터 이미 전년 동월 대비 5%를 넘어섰는데, 당시 8월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은 “이번 인플레이션은 (곧 지나갈) 일시적 현상”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전반적인 상품가격 인상 사태를 오판하고 올해 봄에서야 때늦은 통화긴축 행동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아온 파월이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올해는 ‘인플레이션과의 극렬한 싸움’을 시장에 계속 천명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월은 “물가 안정은 연준의 책임이자 경제의 기반 역할을 한다. 물가 안정 없이는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우리의 2% 목표치로 되돌리기 위해 충분히 (경제 전반의 소비 총수요를 억누르는) 제약적인 수준까지 당분간 의도적으로 (통화) 정책 스탠스를 가져갈 것이다. 역사는 (통화) 정책을 조기 완화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미숙한 통화긴축 완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물가안정 회복에 “당분간”(some time)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정책수단을 “단호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파월의 이날 잭슨홀 발언에 연준의 최종 도달 금리가 연 4% 근방으로 좀 더 상향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메르츠방크의 크리스토프 발즈는 “파월은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금리를 앞당겨 인상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며 “이런 통화정책 사이클이 내년 경기침체와 위축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고, 경기 하강으로 인플레이션이 천천히 하락하면 내년 중반 시점 이후에 연준이 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콜롬비아 스레드니들의 에드 알-후세니는 “연준의 메시지는 일단 원하는 최종 금리에 도달하면 당분간 그 지점에 머물러야 한다는 쪽으로 더 요란해졌다. (적어도) 내년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투자플랫폼 이토로의 캘리 콕스 애널리스트는 “파월은 인플레이션과 필사적인 싸움에서 통화 긴축을 멈추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며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연준의 마음에 들기에는 여전히 너무 높고, 파월은 (금리 인상에 따른 불가피한 희생으로) 성장과 고용을 끌어내릴 위험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파월의 이날 발언은 성장률 하강과 고용 쇼크라는 고통을 수반하는 단호한 금리인상 기조, 즉 경제 경착륙도 무릅쓸 수 있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파월은 “물가를 잡는 데는 불행하게도 비용이 따른다. 높은 금리로 경제 성장이 느려지고 노동시장이 식어가면서 물가상승률을 점차 낮추는 사이에 가계·기업은 일정하게 고통을 겪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물가 안정에 실패하는 건 더 큰 고통을 의미한다. 연준은 강력하고 빠르게 수요를 둔화시켜서 공급과 수요를 조절해 인플레이션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책금리 목표범위는 현재 2.25∼2.5%로, 이른바 이론상의 ‘중립금리’(경기를 과열시키지도 수축시키지도 않은 경기중립적 금리) 추정치 수준에 가까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더 이상의 추가 정책금리 인상 사이클은 경기를 본격 하강시키는 수준에 진입하게 되는 셈이다.
뉴욕증시는 26일 파월 의장의 연설 여파로 급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0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3.37%, 나스닥 지수는 3.94% 폭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내년 상반기 금리인하 전환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이 예상보다 매파적인 파월의 발언이 나오자 일제히 투매에 나섰다. 잭슨홀 미팅은 미 연방준비은행 중 하나인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이 매년 8월 와이오밍주 휴양지인 잭슨홀에서 개최하는 경제정책 심포지엄으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진행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참여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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