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의 한 건어물 가게에 카카오톡 채널 가입용 정보무늬(QR)가 새겨진 간판이 놓여 있다. 정인선 기자
지난 24일 낮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 상점 가판대 곳곳에 정보무늬(QR) 코드를 새긴 간판이 서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 간판 속 정보무늬를 촬영하자, 카카오톡 앱이 열리며 각 가게 ‘카카오톡 채널’로 넘어갔다. “밥상 위엔 싱싱하고 윤기나는 건어물”, “맛있는 한끼를 위한 찬을 팝니다”, “15년 경력 고기장수가 추천하는 한우, 믿고 방문하세요” 등 저마다 적어 둔 개성있는 소개 문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건을 살 때 2천원을 깎아주는 쿠폰도 내려받을 수 있다.
카카오와 카카오임팩트가 이달 1일 신영시장에서 ‘우리동네 단골시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온라인 지식교육 플랫폼 엠케이와이유(MKYU)의 전문 교육을 받은 디지털 튜터 여섯 명이 8주 동안 상주하며 ‘카카오톡 채널을 이용해 단골 손님을 만들고 소통하는 법’을 상인들에게 교육한다. 소신을 가지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전국 상인들을 지원하는 ‘소신상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한 상인이 디지털 튜터에게 카카오톡 채널 활용법을 배우고 있다. 카카오 제공
신영시장에서 디지털 튜터로 활동 중인 이유미(51)씨는 상인들이 낯선 디지털 도구 활용을 주저하면 ‘고도리’ 이야기를 꺼낸다. “어르신! 고도리도 말로 하면 복잡한데 한번 쳐보면 무척 쉽잖아요. 이것도 똑같아요.” 처음 앱을 내려받아 채널을 개설하는 문턱만 넘으면, 프로필 사진을 찍고 소개문을 적은 뒤 단골들에게 홍보 메시지를 보내는 다음 단계는 모두 ‘술술’이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정향미(53)씨는 상인회가 디지털 전환 교육에 참여할 가게를 모집할 때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다른 시장에서 가게를 하다가 지난달 이곳으로 옮겨 왔거든요. 새로 자리잡은 곳에서 가게를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어요. 시식을 권하려고 해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는 꺼리는 이가 많았고요. 카카오톡 채널을 추가만 해도 2천원을 깎아준다고 하니 고객들도 금세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의 한 가게에 카카오 ‘소신상인 프로젝트’ 참여를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다. 카카오 제공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손님들에겐 상점 주인들이 거꾸로 선생님 역할을 한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고영윤(40)씨는 ‘츤데레’(겉으로 쌀쌀맞아 보이지만 속이 깊고 잘 챙겨주는 사람) 전법을 쓴다. 친한 고객이 스마트폰을 들고 헤매면 “그거 이리 줘봐요”라고 해서 직접 채널을 추가해 준다.
상인들의 이런 노력 덕에 고객들도 금방 ‘경험치’를 쌓았다. 이유미 튜터는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은 정보무늬 코드 찍는 것을 어려워하실 줄 알았는데 금방 카메라를 열어 따라하시더라고요. 상인과 고객들이 디지털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다는 걸 몸소 느껴요”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 22일부터 2주 일정으로 신영시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카카오톡 채널 활용법을 알려주는 ‘서로의 단골이 되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에서 상인이 고객에게 ‘카카오톡 채널’ 추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카카오 제공
29일 기준으로 신영시장 상인회 소속 상점 110여곳 가운데 59곳이 카카오톡 채널 개설을 마쳤다. 캠페인이 시작된 지 일주일만에 많게는 100명 넘는 단골을 모은 가게도 있다. 카카오톡 채널에 모은 단골은 그 자체로 홍보 활동을 위한 소중한 자원이 된다. 카카오는 신영시장 내 상점들에 1년간 매달 3만원 상당의 채널 메시지 발송용 캐시를 무상 지원한다. 단골 고객 100명에게 달마다 30번, 즉 매일 한번 꼴로 홍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금액이다. 예를 들어 한 치킨집은 이 캐시를 이용해 마감 시간 직전 “남은 치킨을 할인가에 드린다”는 알림을 보내 단골들의 큰 호응을 샀다. 김동용 신영시장 상인회장은 “큰 마트 같으면 전단지도 뿌리고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하는데, 전통시장들은 고객 관리가 비교적 미흡했던 게 사실”이라며 “디지털 도구로 이를 보완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동네 단골시장 프로그램엔 카카오 계열사의 여러 서비스 중 아직은 카카오톡 채널 한가지만 쓰인다.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카카오쇼핑 등 다른 서비스와의 연결성을 점차 높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진아 카카오임팩트 매니저는 “예를 들어, 지금은 톡채널 가입용 정보무늬 코드와 카카오페이 결제용 정보무늬 코드가 서로 달라 고객이 코드 인식을 따로 해야 한다”며 “시간을 두고 이런 문제를 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서울 양천구 신영시장 입구에 방문객들이 단골 가게 응원 문구를 적어 뒀다. 카카오 제공
카카오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전통시장 열 곳을 다음달 19일까지 공개 모집한다.
누리집에서 지원 서류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육심나 카카오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사업실장은 “카카오의 기술 역량을 활용해 소신을 갖고 사업하는 상인들의 우수 상품과 자부심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