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기업 총수와 일가들이 내부거래가 많은 사업부문을 손자회사로 떼어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15일 보고서를 내어, 개정 공정거래법의 부당이익제공 금지 규제 대상에 손자회사 및 증손회사가 빠져 있어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와 그 일가에 대해 일감몰아주기 등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부당이익제공)를 금지하고 있다. 규제 대상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동일인(총수) 및 특수관계인(친족)이 20% 이상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사와 그 계열사가 발행주식총수의 50%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사’다. 2020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뿐 아니라 그 기업이 지배하는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삼성에버랜드가 지난 2013년 내부거래가 많은 급식사업을 물적분할(삼성웰스토리)해 규제를 회피했던 방식의 편법을 막기 위해서다.
보고서는 “규제 대상 자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손자회사는 사실상 경제적 실체가 동일한데, 손자·증손 회사는 일감몰아주기 등 부당이익제공 규제 대상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여전히 편법적인 물적분할 등을 통해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친족 지분이 25%인 에스케이㈜가 100% 지분을 가진 계열사 휘찬은 자회사로 에스케이핀크스를 100% 지배한다. 총수와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가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순차적으로 100% 지배하는 구조다. 이 경우 개정 공정거래법상 에스케이㈜와 휘찬은 규제 대상이지만 손자회사인 에스케이핀크스는 대상이 아니다. 에스케이뿐 아니라 엘지㈜-디앤오-디앤오씨엠, 한화에너지-에스아이티-에스아이티테크, 지에스(GS)-지에스에너지-지에스당진솔라팜, 씨제이(CJ)-씨제이올리브넥스-디아이웨어 등 63개사(손자회사 기준)가 동일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계열사가 지배하는 자회사까지 규제 범위를 넓혔지만, 그 자회사가 또다른 자회사(손자회사)를 만들어 부당한 내부거래를 하는 편법이 여전히 가능한 셈이다.
보고서를 보면, 부당이익제공 금지 규제를 받는 자회사(총수·친족 지분이 20%를 넘는 계열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기업) 중 손자회사를 둔 기업은 모두 102곳이며, 이들 자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손자회사 수는 314곳에 이른다. 100% 보유가 198개사, 50% 초과~100% 미만 보유가 116곳이다.
이은정 연구위원은 “규제 대상 계열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경우 일감몰아주기나 사익편취 등 부당한 이익제공의 과실 또한 고스란히 총수 일가한테 돌아간다. 최소한 자회사의 손자회사 지분율이 100%인 곳은 경제적 동일체로 보고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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