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관들도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내년도 성장 전망을 속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 등으로 세계 경제가 뒷걸음질하며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특히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격적 통화긴축의 영향으로 3개월 남은 올해는 물론이고 ‘피할 수 없는 2023년 성장 하강’이 엄습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와 한국은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펴낸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으며 올해 2분기에 성장이 멈췄다”며 “많은 경제지표들이 이제 장기간의 성장 둔화를 가리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이시디는 세계경제의 실질 성장률이 지난해 5.8%를 찍고 올해 3%, 내년엔 2.2%로 내려갈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회복으로 반짝 살아났던 세계 경제가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 긴축(정책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둔화 등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가라앉으리라는 것이다. 이 기구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인 2021년 12월 예측과 비교하면 내년 세계의 국내총생산(GDP)이 최소 2조8천억달러(약 4035조원)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전쟁이 촉발한 경제 환경 변화로 내년 세계의 실질 소득(구매력 기준) 2%가량이 증발하리라는 얘기다.
특히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0.3%로 대폭 낮춰잡았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내년에 0.7% 역성장할 것으로 봤다. 에너지 가격 급등 여파로 유로존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10.0%(속보치·전년 대비)를 기록했다. 누리엘 루비니 전 뉴욕대 교수는 지난 30일 트위터를 통해 “유로존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경착륙을 향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경제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국제경제 조사기관인 ‘컨센서스 이코노믹스’는 지난해 5.7%를 기록한 미국의 실질 성장률이 올해 1.7%, 내년 0.7%로 대폭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8월 미국 물가는 미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 결정 때 주로 참고하는 물가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 제외) 가격지수 오름폭(전년 동월 대비 4.9%, 전월 대비 0.6% 상승)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며 정책금리 인상 및 경기 위축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정부의 코로나19 봉쇄 조치와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은행은 최근 발표한 경제 전망보고서에서 중국의 실질 성장률이 2020년 2.2%에서 지난해 8.1%로 올라섰으나, 올해 2.8%, 내년 4.5%로 뒷걸음질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 22개국(중국 제외) 평균보다 낮아진다는 얘기다.
특히 이 기구는 “과거의 모든 글로벌 경기 침체(1인당 실질 지디피 감소)는 미국의 경기 침체와 일치했다”면서 “세계 지디피의 약 55%(2015∼2019년 평균)를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경제의 내년 성장 전망이 하향 조정됨에 따라 내년 글로벌 경기 침체의 위험이 높아졌다”고 짚었다. 지난 50여 년간 5차례(1975년, 1982년, 1991년, 2009년, 2020년) 겪었던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내년에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국의 경기 둔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절대 작지 않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한국의 내년 실질 성장률이 올해(2.6% 전망)보다 둔화한 1.9%에 그칠 것으로 점쳤다. 기획재정부 및 한국은행의 내년 성장 전망치(2.5%, 2.1%)를 밑도는 것으로, 주요 기관 중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 건 피치가 최초다. 이 기관은 “세계 경제의 급격한 둔화가 한국의 수출과 설비 투자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지난해 전체 수출액 중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이른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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