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놓인 달러화의 모습. 연합뉴스
국가별로 발표하는 외환보유액의 회계기준이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다른 일부 국가들은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탓이다. 한국의 경우 시가 변화에 따른 단기적 변동보다는 장기적인 추이 분석에 초점을 둔 것인데, 최근 국채 가격의 하락세를 감안하면 착시 효과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일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한국의 지난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364억달러로 전세계 8위를 차지했다. 한 달 전보다 한 단계 올라왔다. 기존에 8위였던 홍콩의 외환보유액이 100억달러 줄어드는 동안 한국은 22억달러 감소하며 선방한 결과다. 한은은 매달 각국 중앙은행이 발표한 수치를 모아서 국가별 순위를 집계해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착시 효과가 있다. 전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은 대부분 채권과 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지난달 말 기준으로 유가증권 비중이 91.0%에 이르며, 은행 예치금은 3.4%에 그친다. 유가증권 중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주요국 국채의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당국의 변동성 완화 조처도 주로 미국 국채를 팔아 조달한 달러를 시장에 푸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채 가격이 떨어질수록 외환당국의 실탄도 줄어드는 셈이다.
문제는 유가증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회계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계상한다. 유가증권의 시장가격이 매입 당시보다 더 떨어졌어도 장부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홍콩은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반영한다고 한다. 한은 관계자는 “취득원가보다는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국가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미국 국채 가격이 꾸준히 하락세를 그린 점을 감안하면 착시 효과는 작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말 1%대에서 최근 4%를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에는 영국의 감세정책 발표의 여파로 4%를 넘으며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달은 바 있다.
한은은 장기 시계열 관점에서는 취득원가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채권 금리 변동에 따라 금액이 들쑥날쑥하면 오히려 외환보유액의 추이를 분석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환율 변동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 회사의 존속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시장가격을 제때 반영하도록 하는 기업 회계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도 설명했다.
다만 지금처럼 채권 금리의 단기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부정확한 정보가 제공된다는 한계가 있다. 한은 관계자는 “단순히 채권 금리 변동으로 인한 외환보유액의 변화라는 점을 시장이 이해하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시장가격 방식이 적절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한국 정서상 그게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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