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영국이 결국 법인세·소득세 등 감세 정책을 철회했다. 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최악의 재정·통화 정책 조합(폴리시믹스)을 보여줬다는 시장의 혹평을 받았다.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올리는데 정부는 감세 등으로 돈을 풀고, 재정 악화 우려로 국채값이 급락하자 중앙은행이 뒤늦게 국채를 매입해 금리 하락을 유도하는 ‘엇박자’ 정책을 펼쳤다.
내년부터 5년간 약 60조원 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 사정은 어떨까. 지난 14∼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한국도 감세를 철회하는 게 어떨지’ 물어봤다.
한국 사정이 영국과 같진 않다. 영국의 감세는 재정 악화를 초래한다는 점 때문에 시장의 우려를 낳았으나,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불어난 재정 적자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다. 다만 영국 사태를 계기로 법인세 감세 등을 통한 성장의 ‘낙수효과’에 근본적 회의가 제기되고, 감세 철회시 추가로 확보한 재정 여력을 취약계층 지원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세 정책에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한국의 재정·통화 정책 수장의 답변엔 온도차가 있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4일 “감세를 철회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이 세제 개편안을 냈을 때 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며 “우리의 세제 개편안 등 재정 정책에 대한 우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추 부총리는 “독일도 소득세 인하 등 전방위로 세제 감면을 했지만 영국처럼 시장이 요동치지 않은 건 그 나라의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경우 내년에 약 6조원의 세수 감소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중 중산·서민층 소득세 감면 등이 대부분이고 법인세 감세액은 6천억원, 대기업 감세액은 3천억원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세수 감소 규모가 영국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까닭에 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는 얘기다. 추 부총리는 영국과 같은 ‘부자 감세’라는 지적에도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법인세의 투자·성장 유발 효과 등은 보는 관점과 정치적 진영에 따라 시각 차가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동행취재단 제공
이창용 총재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그는 지난 15일 기자와 만나 “추 부총리와 내 견해는 다를 수 있다”며 입을 열었다.
이 총재는 “재정 적자를 줄이는 쪽으로 가는 건 (최근 국제 사회의) 거시 정책 합의 사항이 맞는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감세가 좋으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답이 다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함께 놓고 재정 정책의 타당성을 따져보자는 쪽이다. 예를 들어 소득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같은 세율을 부과해 역진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부가가치세도, 부가세 증세로 더 걷힌 세금을 취약 계층에게 쓰면 역진성을 완화하는 재정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정부의 재정 정책이 소득 분배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개별 세율 하나하나를 보지 말고, 거기서 생기는 조세 수입을 어디에 쓰는지 전체적인 틀을 같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현 정부의 내년도 세제(세금 수입) 개편안과 예산안(재정 지출) 패키지가 소득 분배에 미치는 영향은 “계산해 본 적 없다”고 말을 아꼈다.
추 부총리가 감세 철회를 묻는 질문에 ‘X’자가 써진 손 팻말을 들은 것이라면, 폴리시믹스의 다른 한 축을 맡은 이 총재는 ‘△’가 그려진 팻말을 든 셈이다.
워싱턴/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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