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서부 타타르스탄 공화국 안에 있는 한 석유·가스 시추시설에서 2022년 2월28일 원유 시추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대중국, 유럽의 대러시아 등 최근 여러 경제 제재는 제3국도 제재 대상이 되고, 대상국이 제재를 일부 우회할 여지도 커지고 있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가 브릭스(BRICs·중국·인도·브라질 등) 블럭에 대한 원자재 수출로 경제 제재를 우회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연간 경제성장률을 -8.5%(지난 4월 전망)에서 최근 -3.4%로 대폭 상향 조정한 바 있다.
23일 한국은행이 펴낸 ‘해외경제포커스’ 자료를 보면, 최근 글로벌 경제 제재의 특징은 △제재 부과국에도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고 △제3국도 제재 대상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제재 대상국은 제재를 일부 우회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다. 한은은 “선진국 주도의 세계경제 성장 축이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등 브릭스 신흥경제국으로 분산(다극화)되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국가들끼리 협력기구를 만들어 역내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블록화)이 강화되면서 제재 대상국이 다른 협력 국가와의 교류 등을 통해 제재를 피해갈 여지가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해 수출시장을 브릭스로 다변화하면서 대응해 제재의 부정적 영향을 크게 줄이고 있다. 러시아 주요 수출국의 지난 6월 대러시아 수입자료를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2021년 12월~지난 2월) 평균과 대비해 미국(-68.2%)·유럽연합(-7.5%)은 크게 줄었으나 중국(32.2%)·브라질(78.5%)·인도(334.7%)는 대폭 증가했다.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규모는 지난 2월 하루평균 65만 배럴에서 지난 6월 110만 배럴로 증가했고, 그동안 러시아산 원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았던 인도도 지난 6월 약 100만 배럴을 수입했다. 한은은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 경제가 올해 큰 폭의 역성장(지난 4월 성장률 -8~-11% 전망)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던 아이엠에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전망치를) -6~-3%(지난 9~10월 전망)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릭스는 공통의 경제이익을 향유하는 경제 블록으로 확장을 계속 도모하면서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7.7%에서 2020년 25.0%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브릭스를 포함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1.0%에서 40.5%로 늘었다.
한은은 최근 경제 제재는 “제재부과국과 대상국 간의 높은 경제적 연관성과 글로벌가치사슬(GVC) 참여도, 에너지 의존도, 제재 대상국의 수출제한조처 등으로 대상국뿐만 아니라 제재 부과국에도 무역감소 등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제재를 우회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제3국에 대해 추가 제재를 가하는 규정(세컨더리 제재)이 강화되면서 제재가 제3국에 미치는 2차 파급효과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이 대러시아 제재 시행 시 ‘해외직접생산규칙’(FDPR)을 신규로 도입한 데 이어 최근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안에도 이 규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은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세하면서 탈세계화 및 경제블록화 추세 속에 주요국 간의 경제 제재가 보다 빈번해질 수 있다”며 “미국 중심의 서방국가와 중국 중심의 반서방국가 간 대립과 상호 경제 제재 정도가 심화하면서, 우리는 반대편 시장에 대한 접근이 제약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두 경제블록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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