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니까”
“분식회계를 자진공시하면 정말로 감리를 면제해 주나요?” 2005사업연도 사업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금융감독원에 설치된 ‘투명회계 유도 상담코너’에는 증권 집단소송제와 관련해 질문을 해오는 기업들이 적지않다. 물론 신분은 철저히 숨긴다. 다른 회사의 일인 것처럼 넌지시 물어보기도 한다.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 집단소송제 유예시한이 올해 말로 다가옴에 따라 상장회사들의 분식회계 자진고백이 얼마나 나올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상장사들은 2004 사업연도 이전에 행해진 분식회계를 올해 말까지 자진고백하면 감리 면제나 경감 조처를 받는다. 그러나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 중 분식회계를 고백한 상장사는 지난해 이후 불과 네곳에 그친다. 집단소송제 유예 올말로 끝나
외부감사인 의무교체도 ‘부담’
기업들 문의는 많은데 눈치만
“이미 털어낸 곳 많을 것” 관측 속타는 금감원=금융감독원은 지난해부터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분식회계를 고백할 마지막 기회라며 채근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달에도 전 상장사에 서한을 보내 “과거 위반사항을 2005 사업연도 결산시 자발적으로 수정할 경우 감리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새로이 분식을 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과거 분식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5일 “2005 사업연도에서 과거 분식을 대부분 수정해야 내년에 빠진 것을 일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고해성사를 하는 상장사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과는 미진하다. 자진공시를 한 기업은 지난해에 기아자동차·대한항공·두산산업개발 등 3곳에 불과했으며, 올해는 아직 효성 한 곳뿐이다. 이들도 진짜 ‘자진고백’인지가 불명확하다. 대한항공은 금감원의 감리 도중에 공시를 했고, 두산산업개발은 총수 일가간 비리 폭로전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효성도 조회공시 요구 직후에 나왔다. 그러나 금감원은 다른 대기업들의 고백을 유도하기 위해서인지 모두 자진공시로 판단해, 감리 면제나 경감 조처를 내리고 있다. 예측불허의 고해성사=금감원은 한 회계법인으로부터 6년을 초과해서 계속 감사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외부감사인 의무교체제’가 올해부터 시행된 점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술 안진회계법인 대표는 “나중에 분식회계가 드러나면 이를 적발하지 못한 회계법인에도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감사를 맡은 첫해에는 자세하게 볼 수밖에 없다”며 “코스닥 기업의 경우 의심이 가면 아예 감사를 맡지 않는다”고 말했다. 효성의 경우도 담당 회계법인이 바뀐 것이 분식회계를 고백한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의 감사인은 2000년 이후 계속 안건회계법인이었으나 2005 사업연도에 삼정회계법인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대부분 과거 분식을 이미 정리했기 때문에 새롭게 ‘큰 건’이 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분식회계는 주로 무역상사와 건설업체에서 많았다. 그러나 무역상사의 경우 대부분 분식회계가 이미 적발되거나 스스로 고백을 했으며, 건설업체는 최근 3년간 경기호황을 맞으면서 분식을 떨궈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중국 특수 등으로 여러 업종이 호황을 맞은 만큼 과거 분식을 정리했을 수 있다”며 “다만 호황을 맞지 못했거나 분식 규모가 너무 커 처리하지 못한 기업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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