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시내 은행에 걸려있는 대출 안내 현수막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대기업의 은행대출이 9조원 넘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전체로는 증가 폭이 14조원에 육박해 10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살얼음판’인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기업들이 은행 대출창구로 발길을 돌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예금은행(은행신탁 포함)의 기업대출 잔액은 13조7천억원 늘었다. 이는 10월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지난 8월(8조7천억원)과 9월(9조4천억원)에 비해서도 증가 폭이 크게 늘었다.
특히 대기업 대출 규모가 눈에 띄게 불어났다. 대기업 대출의 증가 폭은 9월 4조7천억원에서 10월 9조3천억원으로 뛰었다. 강도 높은 통화긴축과 경기 둔화로 회사채 시장에서 찬바람이 불자, 대기업들마저 채권시장 대신 은행에 달려간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달 초·중순부터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대출은 4조4천억원 늘면서 전달(4조7천억원)과 비슷한 추이의 증가세를 이어갔다.
기업 대출의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의 다른 자금조달 통로가 틀어막히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공모 회사채는 두 달째 순상환을 기록했다. 기업들이 회사채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기보다는 뱉어냈다는 뜻이다. 순상환 규모도 3조2천억원으로 9월(6천억원)보다 늘었다. 다만 일반기업의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는 우량물을 중심으로 순발행(3조1천억원)으로 전환했다.
이달 들어서도 채권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 1∼8일 회사채는 4365억원 순상환을 기록했다. 채권시장 수급 부담이 얼마나 해소될지도 불투명하다. 얼마 남지 않은 채권 수요를 휩쓸어갔던 은행채 발행이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나, 은행채와 함께 ‘물량 교란범’으로 지목된 한국전력공사는 여전히 기존 수준의 채권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들어서 발행된 한전채는 이미 9900억원 규모에 이르렀다. 최근 한전은 채권 발행을 줄이고 대신 2조∼3조원 규모의 은행 대출을 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은행으로 돈이 쏠리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 현상에 대한 우려도 심화할 전망이다. 지난달 은행 수신은 6조8천억원 증가했다.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서 가계·기업 자금이 유입된 영향이다. 수시입출식예금은 44조2천억원 줄었고, 정기예금이 56조2천억원 늘었다. 정기예금 증가 폭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최대치다.
다만 은행채는 9월 3조8천억원 순발행에서 10월 3조원 순상환으로 전환했다. 정부와 한은이 잇따라 은행채 발행 축소를 유도하는 대책을 내놓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