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가 열리는 28일 오후 서울 시내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 식어도 좋으니, 조금 늦더라도 꼭 배달해주세요. 제발 저도 치킨집 치킨 뜯으며 월드컵 보고 싶어요.”
28일 열린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가나전을 앞두고 치킨을 갈망하는 한 소비자가 배달 주문 메시지에 적은 글이다. 이 글을 배달 라이더 커뮤니티에 공개한 라이더는 “내가 ‘오늘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치킨을 먹게 해주겠다’고 결심하고 비를 뚫고 배달했다”고 적었다.
가나전 경기는 석패했지만, 또다시 치킨은 이겼다.
29일 치킨업계에 따르면, 가나전 경기가 열린 전날 치킨 매출은 또다시 급증했다. 비비큐(BBQ)는 이날 매출이 전월 같은 요일(10월31일)에 견줘 220% 상승했으며, 전주(11월21일)와 비교해도 190% 상승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24일 조별리그 1차전 우루과이전 때보다도 약 4%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비에이치씨(bhc)도 전월 대비 297%, 전주 대비 297% 매출이 올랐고, 1차전과 견줘서도 약 7~8% 증가했다. 교촌 역시 가맹점 전체 매출을 종합했을 때, 전월 대비 160%, 전주 대비 15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적정 배달료 보장을 요구하며 쿠팡이츠 배달 라이더들이 벌인 ‘로그아웃 파업’도,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도 사실상 치킨의 질주를 막지는 못한 셈이다.
이날 순조로운 배달을 위한 배달앱들의 ‘할증 공세’도 쏟아졌다. 쿠팡이츠의 경우, 이날 프라임타임 할증과 기상 할증 등이 붙으면서 경기 시작 전후로 서울지역 배달단가가 1만원~1만6천원까지 치솟았다. 라이더 커뮤니티에는 쿠팡이츠 배달단가 인증샷이 올라오기도 했다.
배달의민족 검색순위에는 비메이저 치킨 프랜차이즈가 검색순위 상위를 기록했다. ‘쏠림’을 피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선택을 보여준다. 배민앱 갈무리
하지만 ‘치킨 배달 대란’은 1차전에 견줘 덜했다. 점주들은 라이더의 조리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한 라이더는 “조리대기를 각오하고 치킨 콜을 잡았는데, 가보니 이미 초벌 요리가 다 돼 있는 것을 기름에 순차적으로 튀기면서 시간을 절약하더라”며 “아무래도 1차전 때의 혼란을 통해 학습효과가 생긴 듯싶다”고 전했다.
많은 소비자가 ‘배달’ 대신 ‘포장’을 택한 것도 혼란이 줄어든 이유로 꼽힌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아무개(47)씨는 “1차전 때 치킨을 먹기 위해 동네 치킨집에 거의 동냥 수준의 전화를 돌렸던 경험을 곱씹으며, 2차전 때는 일찌감치 치킨을 포장 주문해 놓고 찾으러 갔다”고 말했다.
치킨 주문이 몰리는 치킨 3사를 피해 비메이저 치킨집을 택하는 소비자도 많아 분산효과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배달앱 배달의민족 순위를 보면, 매출 1~3위 치킨3사 외에 소규모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가 검색순위를 전부 차지했다. 성북구에 사는 박아무개(48)씨는 “평소에 즐겨 먹던 교촌치킨을 포기하고 다른 치킨집에 주문 전화를 했다”며 “아무래도 인기가 좀 덜한 치킨집 배달이 빠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주문 30분 만에 배달이 완료됐다”고 흐뭇해 했다.
가나전 전후 쿠팡이츠의 배달단가 표시. 커뮤니티 갈무리
치킨업계와 더불어 편의점업계도 매출 상향 곡선을 그렸다. 2차전이 열린 날,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월드컵 이전(11월14일)과 비교해 치킨 80%, 오징어 100%, 스낵 70%, 맥주 150%, 무알콜 맥주 200% 등 매출이 급증했다. 특히 저녁 6시부터 밤 10시 피크타임에는 치킨 200%, 맥주 250%, 무알콜 맥주 300% 등 매출이 껑충 뛰었다. 이마트24 역시 맥주 132%, 닭강정 등 간편 안주는 139% 증가하는 등 매출이 상향 곡선을 그렸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던 광화문 인근 편의점 점포 매출도 크게 올랐다. 세븐일레븐은 광화문 인근 10개 점포의 매출이 평균 30% 올랐으며, 이 가운데 치킨이 1400%, 맥주가 400% 등으로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비가 쏟아지면서 우산·우비 등의 제품 매출은 4만5000% 치솟았다. 이마트24 역시 광화문 인근 3개 점포의 매출 증가율을 분석했을 때 맥주 131%, 와인 93%, 용기면 63%, 음료 52% 등을 기록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