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2.9원 내린 1297.0원에 개장했다. 연합뉴스
“얼마 전 1440원대까지 치솟던 환율이 이젠 자고 일어나면 막 떨어지네요. 당시 언론이 1500원대까지 오를 거란 전망을 하던 터라 서둘러서 환전해놨는데…. 속이 쓰리네요.”
출장이 많아 한국보다 국외에 체류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30대 직장인 조아무개씨는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 폭을 보며 ‘멘붕’이 왔다고 했다. 고공행진을 하며 1400원대까지 뚫었던 환율이 5일 1200원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조씨는 “기업이나 투자자만큼 거액은 아니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꽤 손해를 봤다”며 “무엇보다 두 달 사이 이렇게 환율 변동 폭이 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400원대 중반을 찍었던 환율이 5일 1300원 밑으로 떨어지며 약 4개월 전 수준으로 되돌이표를 그리자, 유학생 자녀를 둔 사람들과 연말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 블랙프라이데이에 ‘지름신’이 강림했던 사람, 달러 통장을 가진 사람들이 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들은 “킹 달러를 외치던 언론의 전망 탓에 손해를 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미국에 두 아이를 유학 보낸 50대 직장인 정아무개씨는 요즘 환율 변동 폭을 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했다. 정씨는 “두 달 전만 해도 고환율 탓에 허리가 휠 것 같아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두 달 사이 환율이 계속 하락해서 놀랐다”며 “그나마 미리 환전한 돈이 크진 않아 손실은 적지만, 당시엔 대량 환전을 해놓아야 할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연말 여행을 위해 미리 환전해 둔 여행객들도 아쉬움이 역력하다. 고아무개(44)씨는 “당시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는 ‘환율이 계속 오르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행에 쓸 돈을 조금씩 환전해 놓아야 한다’는 글이 많았다”며 “1400원대에 3천달러나 환전을 해놨는데, 솔직히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환율이 1400원대 중반을 찍었을 때 가족과 함께 국외여행을 다녀왔다는 김아무개(34)씨는 “현지 결제여서 최고가에 결제를 했다. 몇백만원을 더 내고 여행을 다녀온 셈이라 여행을 좀 늦추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여행 준비객들 사이에서는 두 달 전과 달리 국외여행 때 환전해서 현금을 쓰기보다 될 수 있는 한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환율 손해를 덜 보는 지름길이라는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미리 결제해 둔 면세점 물건을 취소하고 재결제했다’는 글도 잇따르고 있다. 한 누리꾼은 “미리 결제해 둔 상품을 적립금 혜택, 페이백, 주중·주말 프로모션 차이까지 꼼꼼히 따져 환율 하락분과 비교해 재결제했고, 10만원 넘게 절약했다”며 “환율이 더 내리면 다시 한 번 재결제할 생각인데, 면세점 직원들도 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친절하게 응대해주니 현명한 소비를 하면 된다”고 적었다.
얼마 전 블랙프라이데이에 명품 등을 직구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소비자들도 속이 쓰리긴 매한가지다. 40대 직장인 박아무개씨는 “환율이 세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블프’라 별렀던 명품가방을 질렀다”며 “한두 푼짜리가 아니라 연말 지나고 사도 됐을 뻔 했다고 후회 중”이라고 말했다.
달러 통장을 미리 털지 못한 사람들도 환율변동을 주시하고 있다. 조아무개(45)씨는 “1400원대에서 달러 통장을 정리하려다가 언론 보도를 보고 더 오를까 싶어서 갖고 있었는데, 이젠 1200원~1100원대 이야기까지 나오니 타이밍을 놓친 듯 싶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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