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닥친 최근, 치솟은 전기요금에 난방을 둘러싸고 ‘편의점주-알바생’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게티 이미지 뱅크
서울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아무개(23)씨는 최근 불어닥친 체감 기온 영하 17도의 한파에 죽을 맛이다. 점주가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며 야간에는 난방을 최소화하고, 전기방석이나 전기스토브 등 개인 전기용품도 쓰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너무 추워서 손이 오그라들고 털신을 신고 있어도 발이 시린데도 시시때때로 전기요금 폭등을 호소하는 점주님 때문에 심지어 휴대전화 충전기 사용마저 눈치가 보일 지경”이라며 “아르바이트 직원도 사람인데, 내 돈으로 핫팩을 사서 몸에 대고 있자니 서러움이 폭발한다”고 호소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30평 규모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정아무개(50)씨는 요즘 전기요금 명세서를 받아들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10월엔 7300㎾h(킬로와트시)를 썼음에도 요금이 85만원 남짓이 부과됐는데, 11월엔 이보다 적은 6800㎾h를 쓰고도 91만원이 넘게 찍혔고, 12월엔 6300㎾h를 썼음에도 100만원이 훌쩍 넘는 요금이 청구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무리 겨울이라도 상품 변질 우려가 있으니 냉장고를 끌 수는 없고, 사람이 적은 야간에는 매장 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거위털 패딩과 핫팩 등으로 무장한다”며 “이전엔 상생협약 등으로 본사가 전기요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는데, 끊긴 지 오래다. 주간 야간 아르바이트 직원이 몰래 전기방석을 사용해 야박하지만 몇 번이나 주의를 줬다”고 하소연했다.
전기요금이 치솟은 가운데 한파가 닥쳤다. 한 점주가 자신의 편의점 내부 온도를 인증한 사진을 올렸다. 커뮤니티 갈무리
치솟는 전기요금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과 점주들이 모두 고통받고 있다.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난방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점주들은 “가뜩이나 추위에 매출도 안 나오는데, 전기요금에 치가 떨린다”고 강변한다. 전기요금 탓에 때 아닌 ‘편의점 노사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올 들어 최악의 한파가 닥친 이번주 들어 아르바이트 직원과 점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15일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모인 커뮤니티와 점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는 ‘추위’와 ‘전기요금’을 둘러싼 하소연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편의점을 둘러싸고 특히 ‘전기요금’에 대한 아르바이트 직원과 점주 간 갈등이 빚어지는 이유는, 전기용품이 많은 데다 손님의 들고남이 잦아 매장 내 열 손실이 많기 때문이다. 한 점주는 <한겨레>에 “냉·온장고, 워크인쿨러, 냉동고, 온수기, 커피머신, 전자레인지, 공기청청기 등 매장이 크든 작든 전기 소모량이 많은 전기용품을 다 갖춰야 하는 데다, 손님들이 잠깐 물건 사러 들어왔다가 계산하고 나가는 식이어서 문은 쉴 틈 없이 개폐되니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올들어 세차례나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전기요금이 더 많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전력은 올 들어 지난 4월, 7월, 10월 등 전기요금을 세차례 인상한 바 있다. 올해에만 ㎾h당 19.3원을 올렸는데, 벌써부터 내년에는 1분기에만 올해 인상 폭의 3배인 64원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최대 6배까지 늘려주는 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한전채 발행 없이 전력 대금을 결제하고, 한도가 초과한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 3분기까지 한전의 누적 적자는 무려 21조8천억원에 달한다. 가뜩이나 고물가와 경기침체에 고통받은 서민들은 이제 내년엔 전기요금 폭탄까지 우려해야 하는 셈이다.
또 다른 점주는 “모든 것이 오르는데, 매출만 안 오르는 상황이라 아르바이트 직원도 점주도 추위에 떨며 일하면서도 서로를 원망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전기요금이 두려운 게 편의점주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 내년에도 전기요금은 더 오른다니 막막하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