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연합뉴스, 부영·금호석유화학 제공
새해 대통령 특별사면을 앞두고 사면·복권을 기대하는 범죄 전력 총수 재벌 기업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전방위 로비를 벌이는 등 노골적으로 총수 구명을 거들고 있다. 재계 안에서도 “낯뜨거운 행태”라는 반응이 나온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경제단체 공동명의로 ‘새해 기업인 특별사면 명단’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경제단체들의 사면·복권 건의 명단에는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지난 8월 광복절 사면 건의 대상에도 포함됐지만 실제 사면·복권에선 빠졌다. 한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 기조를 강조하고 내년 경제 상황도 비상인 만큼 기업인 사면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번 사면은 정치인 위주라고 하니, 재계 대상자들의 경쟁률은 더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태광그룹이 지난 19일 갑작스런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2032년까지 10년간 총 12조원을 투자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7천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태광그룹이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밝힌 건 사실상 처음이다. 태광 쪽은 “내년 초 발표 예정이었으나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와 공식 발표한 것이며, 다른 의도는 없다”고 밝혔지만, 재계 안에서는 “낮뜨거운 여론전”이란 평가가 많다.
4대 그룹 관계자는 “느닷없이 연말에 10년 투자계획은 다소 생뚱맞다. 사면 심사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겠다는 것 같은데 너무 노골적이다”라고 말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지금 시점에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사면용이라는 의심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투자 규모 역시 과도해 보다 구체적 내용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은 ‘황제 보석’ 논란 속에 2018년 말 구속돼 3년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0월 만기 출소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적극적인 로비전을 벌인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한 경제단체 고위 임원은 “복수의 국회의원들이 이 회장의 사면 필요성을 여러차례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또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 부회장 쪽이 주요 언론사 간부들을 상대로 우호적인 여론 형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부영그룹 쪽은 “사면과 관련해 특정 국회의원에 요청을 한 일이 없고, 일상적인 홍보 이상의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중근 회장은 횡령·배임 등 12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돼 복역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사면·복권에 안간힘을 쓰는 ‘비리 총수’들은 대부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의 ‘2년간 취업제한’ 규정에 묶여 있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형 집행이 끝났거나 집행유예 기간 종료 뒤 2년 동안은 다시 취업할 수 없다. 사면·복권은 이런 취업제한 등 경영 복귀를 막는 ‘족쇄’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지름길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은 지난 5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뒤 총수 직함만 유지한 채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이사 복귀를 위해 법무부와 소송전을 벌였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기간에도 취업이 제한된다’는 판결이 나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이번 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되면, 불법 취업 논란에서 벗어나 온전히 경영에 복귀할 길이 열리게 된다.
법무부는 오는 23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어, 윤석열 정부의 새해 특별사면 대상자를 최종 선정해 사면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은 이날 공동 논평을 내어 “재벌 총수를 사면·복권해야만 풀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이나 시대적 문제는 확인되지 않는다. 문제 많은 재벌 총수의 사면·복권을 반대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사면권을 헌법의 명령에 따라 엄격하고 신중하게 행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회승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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