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2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광성2리 마을에서 주민들이 영농 폐비닐을 수거하고 있다. 장곡면 주민자치회 제공
‘농촌 영농폐기물 수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지난 9월30일 오후 충남 홍성군 장곡면사무소에서 주민자치회 주도로 열린 정책제안 토론회의 핵심 의제다. 농촌 마을 구석구석에 널브러진 폐비닐과 농약병 따위의 영농폐기물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고질적인 문제다. 한국환경공단 조사를 보면, 연간 영농 폐비닐류 발생량은 32만t이고 수거되지 않은 7만t가량이 방치되거나 임의 소각 또는 매립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농촌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지금 이대로면 몸살을 앓고 있는 농촌 마을 쓰레기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마을의 영농폐기물 토론회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장곡면 주민자치회(회장 윤창수)가 기획을 했고 세부 계획은 자치회 분과위원을 맡고 있는 주민들이 직접 짰다. 장곡면 주민자치회 생활·환경분과의 한성숙 위원은 “주민 토론을 통해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정책적 해법을 모색하려는게 주된 목적”이라고 말했다. 자치회는 주민 주도의 영농폐기물 수거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오우식 월계1리 이장은 “작년부터 주민자치회 활동에 참여해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배출량이 너무 많다. 절대적인 양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마을은 70대가 70%다. 누가 수거하고 처리할 건가. 심각한 문제다”라고 했다.
실제로 농촌 마을의 영농폐기물은 도시 쓰레기 문제 못지 않다. 영농폐기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폐비닐이다. 비닐하우스 말고도 농작물을 재배할 때 토양의 표면에 덮어주는 보온덮개용 부직포와 차광막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데, 사용후 그대로 매립하거나 소각되면서 경작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농촌에서 마땅한 처리시설이나 예산, 인력 등이 부족해 해마다 엄청난 양의 폐비닐이 쏟아진다.
영농폐기물 수거와 운반, 처리 문제는 농촌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있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품앗이로 했지만 이제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졌다. 장곡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홍성군 고령화율은 50%에 달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장곡면은 작은 규모의 농지를 기반으로 한 소농이 대다수다. 인구 2800명 중 절반이 65살을 넘긴 고령이다. 한성숙 위원은 “주민자치회에서 주민총회를 열어 올해 자치계획 중 우선순위를 물었더니 영농폐비닐 문제가 1순위로 꼽혔다”며 “주민들도 그만큼 이 문제를 시급한 해결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30일 오후 충남 홍성군 장곡면사무소에서 ‘농촌 영농폐기물 수거,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주제로 주민들이 토론하고 있다. 장곡면 주민자치회 제공
2020년 발족한 장곡면 주민자치회는 자치계획을 세우고 공론장을 열어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실행하는 주민대표 기구이다. 36명의 자치위원이 기획·홍보, 농업·경제, 복지·돌봄, 생활·환경, 교육·문화 등 5개 분과를 두고 매월 정기회의를 연다. 주민들의 뜻에 따라 영농폐기물 해결에 나선 자치회는 때마침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환경 프로젝트 ‘초록열매’ 공모 사업의 자원순환 분야에 선정돼 동력을 얻었다. 먼저 전문강사에게 환경교육을 받은 주민 14명이 자원순환 강사가 되어 16개 마을을 돌며 환경교육을 했고, 고령 주민의 눈높이에 맞춰 개발한 콘텐츠로 영농폐기물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처리방법을 안내했다. 장곡면 전체 주민의 20%가 환경교육을 받았고, 불법소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마을별로 수거인력과 환경매니저, 모니터요원, 이장이 한 조가 되어 봄·가을 영농전환기에 폐비닐 20t을 수거했다. 이를 바탕으로 관련 정책과 조례 제정 요구를 위한 정책제안 토론회를 열었고 홍성군의회는 지난 11월4일 ‘영농폐기물 수거·처리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화답했다.
그러나 영농폐기물 수거 사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갈 길이 멀다. 조례를 통해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현실적으로 필요 예산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또 어디까지 주민 주도로 하고 시·군 단위 사업으로 분담해야 하는지 적잖은 난제를 안고 있다. 수거를 잘한다고 해서 농촌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수거는 이미 발생된 쓰레기를 처리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농폐기물 정책 수립의 우선순위는 발생 억제가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동 소장은 “치워도 치워도 나오는 영농폐기물, 리 단위 전국 3만7천여 마을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발생 자체를 줄이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고민을 중앙정부가 나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농민들은 영농폐기물 발생을 줄이기 위해 비닐을 안쓰는 농가에게 장려금을 줄 것을 제안한다. 장곡면에 이웃한 홍동면의 한 주민은 “폐비닐을 그대로 놔두면 토양오염은 물론 악취도 심하다. 1년에 두번 수거하는데 그치지 말고 여러번 수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농촌 주민들만으로 한계가 분명한 만큼 시·군 차원에서 수거 인력과 장비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영농폐기물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최선경 홍성군의회 의원은 “집행부와 협의해 수거·처리 작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홍성군으로부터도 “미비한 점은 보완해 내년 사업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장곡면 사례는 주민 자치계획이 조례 제정까지 이어지고 여러 기관,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어 농촌 공동체 회복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홍성/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
*본 기획물은 <한겨레>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기획한 ‘나눔이 희망이다’ 시리즈 마지막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