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여신 신용평가시스템 시행 5년째
담보 요구되는 5~6등급 분류가 대부분
담보 요구되는 5~6등급 분류가 대부분
담보있어야 대출? 경기도에서 베어링을 생산하는 중소업체인 ㄷ기업은 은행 대출을 20억원 가량 쓰고 있다. ㄷ기업 재무담당 이사인 김아무개(50)씨는 지난해 원자재인 청동 가격이 50% 가량 급등하면서 자금이 부족하자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은행 담당자는 더이상 담보를 잡을 게 없다며 추가 대출을 거부했다. 김 이사는 “중소기업은 은행 밖에 기댈 곳이 없지만, 담보를 요구하는 은행 관행은 여전하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은행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된 ‘기업여신 신용평가시스템’이 시행 5년째를 맞지만 여전히 겉돌고 있다. 시스템은 운영되고 있지만, 담보 위주의 대출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9개 국내은행의 신용평가시스템 운영을 점검한 결과, 여신거래를 하는 법인기업(개인사업자 제외) 26만4007개 가운데 71.8%인 18만9478개 기업에 이 시스템을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신용평가시스템은 기업의 재무제표나 사업성, 현금흐름 등을 토대로 기업의 신용을 1~10등급으로 분류해 신용 대출 가능 여부, 금리 등을 결정하는 것으로 대출제도 선진화 차원에서 2002년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 운영 실태를 보면, 주먹구구식 담보 대출 관행이 여전하다. 이 시스템이 적용되는 기업의 신용등급별 분포를 보면, 신용 대출이 가능한 1~4등급이 18.4%에 불과하고, 담보 제공이 요구되는 5~6등급이 72%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신규 대출이 거의 불가능한 7~10등급은 9.6%였다. 대출기업 열개 중 일곱개 꼴로 담보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병화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 부국장은 “해당 기업이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평가하기도 힘들 경우 애매모호한 등급인 5~6등급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별로 보면, 우리은행은 5~6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90.5%에 달했다. 대구은행(87.8%), SC제일은행(86.5%), 한국씨티은행(85.1%), 외환은행(82.9%), 제주은행(82.6%) 등도 5~6등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하나은행(57.3%), 기업은행(63%), 국민은행(64.6%) 등은 5~6등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수은행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각각 17%, 49.7%였다. 은행 관계자들은 우량 기업과 달리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힘든 기업들이 주로 은행을 찾는데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이익을 축소하는 등 스스로 신용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항변한다. 한 은행 대출담당자는 “은행도 심사 능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이익을 축소하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금융·재정연구팀장은 “은행들이 제도는 도입했으나 아직 평가 노하우가 축적되지 못한 것 같다”며 “현재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기술력이나 장래성이 있는 기업들을 발굴해서 키우는 것이 은행의 기능”이라고 말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들의 심사능력 제고를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을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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