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서울 신한은행 본점에서 자영업자 가운데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처음으로 가입한 장보균씨가 통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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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연금저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골드바를 경품으로 내건 데도 있다. ‘13월의 월급’으로 불리는 연말정산의 세액공제 혜택이 적지 않은 금융상품이라는 점을 겨냥해서다. 회사가 퇴직금 용도로 적립한 돈(퇴직충당금)을 운용하는 것을 포함한 퇴직연금 시장이 300조원 규모로 불어나 금융기관의 유치 경쟁도 뜨겁다. 얼마 전 일반은행과 제2금융권이 정기예적금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린 직접적 계기가 퇴직연금의 무더기 이동 우려였다. 예치 기간이 대체로 12월에 끝나는 자금이다.
직장인이 연말정산 때 세금을 더 돌려받으려면 연금저축과 IRP에 가입하는 게 좋다. 가입자 총급여가 5500만원(종합소득 4천만원) 이하는 16.5%, 넘으면 13.2%를 환급받는다. 연간 한도인 700만원(연금저축 최대 400만원)을 넣으면 환급액이 각각 115만5천원과 92만4천원이다. 2022년 말까지 50살 이상(총급여 1억2천만원 이하)은 한도가 900만원(연금저축 600만원)이니 그 액수가 약 30만원 늘어난다. 이렇게 적립한 돈을 퇴직 뒤 연금으로 받을 때 세율이 훨씬 낮은 3.3(80살 이상)~5.5%(70살 미만)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퇴직이 임박한 중장년 직장인도 연금계좌 세액공제를 활용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10년에 걸쳐 나눠 받도록 한 연금을 한꺼번에 인출하면 16.5%의 기타소득세를 토해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55살부터 해마다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전체 연금평가액의 12% 정도로 제한돼 있다. 총액이 1억원이라면 첫해 수령 한도가 1200만원인 셈이다.
연금상품 가운데 어떤 것이 유리할까. 먼저 연금저축보험은 금리연동형으로 보험사가 운용한다. 원금보장의 장점이 있지만 수익률이 낮다. 보험사에서 초기 사업비를 많이 떼가기 때문에 중도해지 때 손실 우려가 크다. 가입한 지 몇 년이 지나도 해지하면 원금을 회수하기 쉽지 않다. 퇴직 뒤 노후 생활비에 못 미치는 국민연금을 조금 보완하는 역할로 생각하는 게 좋다.
연금저축펀드와 IRP는 개인이 직접 운용한다. 투자에 더 무게가 실린 게 증권사의 연금저축펀드다. 연금저축펀드는 주식 등 위험자산에 100% 투자할 수 있다. 반면 정기예금 등 원금보장 상품으로 운용할 수 없다. 안전성 측면에서 연금저축 펀드와 보험의 중간 정도인 것이 IRP다.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이 70%가 넘을 수 없고, 원금보장 상품에 돈을 넣어도 된다. IRP 가운데서도 증권사 계좌의 투자 허용 범위가 은행보다 넓다. 정년이 멀지 않은 중견기업 P부장은 안전성 우선이다. 원금보장이 되는 연금저축보험에 연간 240만원, IRP에 660만원을 넣어 세액공제를 한도껏 받는다. IRP도 주로 정기예금으로 운용한다. 최근 크게 오른 금리 덕택에 투자 고민이 줄었다.
9월 말 기준 IRP 적립금이 약 43조원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IRP는 계좌를 개설한 금융기관에 운용·자산관리수수료를 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은행과 보험사의 수수료는 0.2~0.6%다(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비율이 높지 않지만 장기간 매년 물어야 하므로 부담이 작지 않다. 퇴직연금 유치 경쟁으로 수수료를 면제하는 증권사가 많이 늘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서비스에서 증권사 수수료를 비교한 뒤 해당 증권사 누리집의 규정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근무하는 회사가 지급하는 퇴직연금은 확정기여(DC)형과 확정급여(DB)형으로 나뉜다. 전자는 본인 연금계좌로 받아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 가진 돈이 아니라 매년 회사가 지급하는 퇴직급여가 재원이라는 게 IRP와 다른 점이다. 후자는 회사가 돈을 굴린 뒤 기존 퇴직금처럼 지급하는 방식이다. 2020년 통계를 보면 DB형에 견줘 DC형을 도입한 기업이 2.5배 정도 많다.
정해진 액수의 퇴직연금(DB형)은 IRP 계좌로 들어온다. 이 돈을 연금으로 받으면 한꺼번에 찾을 때의 퇴직소득세보다 세금이 30%(10년 지나면 40%) 줄어든다. 일시금으로 빼 썼더라도 60일 안에 다시 넣으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돈(사용자부담분)에도 금융기관 수수료가 붙는다. IRP 계좌는 1개 금융기관에 하나만 허용되지만, 여러 곳에 만들 수 있다. 용도에 따라 복수의 계좌를 만들고 나눠 관리하면 중도해지나 운용·관리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최근 P부장은 몇 년 전 회사 가까운 은행에 개설한 IRP 계좌의 적립금을 다른 데로 옮길까 고민하고 있다. 수수료 때문이다. 비대면 또는 모바일 앱으로 IRP 계좌를 만들면 전체 적립금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증권사들이 있어 그쪽에 새로 계좌를 만들었다. 적립금 이동(연금이체) 절차는 매우 간편해졌다. 새 금융기관에 이동 신청을 한 뒤 이전 기관의 확인 전화에 응답하면 된다. 그러나 원금보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실적배당 상품 판매를 중시하는 증권사에서 내놓은 원금보장 상품이 제한돼 있지 않은지 확인한 뒤 계좌이동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
연금저축과 IRP 계좌의 적립금을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겨도 세금 혜택은 유지된다. 그러나 투자 또는 예치한 상품을 모두 현금화한 뒤 한꺼번에 옮기게 돼 있다. 따라서 매년 돈을 추가로 넣어 각각 다른 상품에 넣었다면 환매 또는 해지에 따른 손실이 가장 적은 시점을 택해 옮기는 게 좋다. 적립금을 저축은행 세 곳의 1년 만기 정기예금에 넣은 P부장은 가장 만기가 늦은 예금의 기한 만료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함께 퇴직연금과 관련해 2022년 7월 새로 시행된 ‘사전지정운용’(디폴트 옵션) 제도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본인이 직접 운용하는 DC형 퇴직연금과 IRP의 가입자가 운용 상품을 결정하지 않고 놓아뒀을 때 미리 정한 방법에 따라 운용하도록 한 것이다. 새로 가입한 뒤 2주 또는 기존 상품 만기가 지난 뒤 6주 동안 가입자의 의사 표시가 없으면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정부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가입자가 사전에 운용 상품을 선정하도록 의무화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운용 상품이 결정되지 않으면 대기성 자금으로 남아 낮은 금리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성 자금은 위험자산 투자가 되지 않는다는 점과 디폴트 옵션의 적용을 받은 IRP 적립금은 위험자산 비중 제한(70%)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 퇴직연금의 투자 활성화에 무게가 실린 제도다.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