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희 굿바이카 대표가 4일 오후 경기도 양주 사업장에서 전기차 해체 작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전기차에 장착돼 있던 배터리 팩이 오른 쪽 바닥에 놓여 있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회사 이름을 알리는 ‘굿바이카’와 함께 ‘폐차’라고 커다랗게 적힌 글귀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왼쪽으로 돌아들어가면서 만나는 야적장에는 폐차 처리된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양주 사업장에서 만난 남준희(57) 굿바이카 대표는 뒤쪽에 3층으로 켜켜이 쌓인 차들을 가리키며 “좁은 공간 탓에 내연기관차는 저런 식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앞에 한줄로 늘어선 차량 20대 가량이 전기차이며, 대개 사고나 침수 피해를 당해 폐차 처리된 경우라고 했다.
자동차 해체·재활용 업체 굿바이카가 내연기관차에 이어 전기차 처리에도 나선 것은 2018년 7월부터다. 하이브리드 차량부터 폐차처리 의뢰가 들어왔으며, 재작년까지는 한 달에 1대꼴, 지난해부터는 더 늘어 한 달에 3대 정도씩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전기차 보급 속도에 비춰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아직 내구연한에 이를 정도는 아니어도 차량 보급 확대로 영업용을 중심으로 사고를 당해 폐차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양주 굿바이카 사업장에서 직원이 전기차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택시로 쓰이던 EV6가 사고를 당해 폐차 처리됐다.
남 대표는 “택시로 쓰던 ‘아이오닉5’ ‘EV6’, 1톤 트럭 전기차 ‘포터2’ ‘봉고3’ 같은 게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운행 거리가 길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남 대표는 “전기차 폐차처리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내연기관차에 견줘 부품 가짓수는 적지만 고가이고 잔존 가치를 평가할 방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굿바이카는 외장재 따위의 간단한 부품은 판매하고, 배터리나 구동모터 같은 주요 부품은 일단 창고에 보관한 상태로 활용 방법을 연구 중이다. 대학이나 대기업 쪽에서 직접 방문해 연구용으로 사 가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굿바이카가 지금까지 처리한 전기차는 보관 중인 재고 27대를 제외하고 총 52대라고 했다. 처리 방법은 대략 세 갈래다. 우선 차량을 통째로 되파는 방법이 있다. 수익성에선 가장 나은 방법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쪽 바이어가 통째로 사간 사례가 지금까지 4건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는 일반 폐차처리처럼 조각조각 분해해 철판, 알루미늄, 구리 따위의 물질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굿바이카가 주목하는 세번째 방법은 물질로 분해하지 않고 부품 단위로 떼어내 판매하는 식으로 재사용·재활용하는 것이다.
남 대표는 “(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 등록 기준으로) 550개가량 되는 폐차장 가운데 부품을 재사용·재활용하는 본격적인 의미의 전기차 해체 처리 단계에 이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굿바이카는 전기차 재사용·재활용을 위한 전문 폐차장을 지난해 10월 경기도 이천에 열었다. 일반 내연기관차 처리를 위주로 하는 양주 사업장에 이은 2호점이며, 여기선 전기차를 주로 다룬다. 남 대표는 “양주의 1호점이 전기차 재사용·재활용 연구·개발을 하기엔 비좁아 더 큰 폐차장을 물색해오다가 법원 경매를 통해 기존 폐차장을 매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2호점의 규모는 대지 3천평, 건물 1400평 수준이라 한다. 굿바이카는 이곳에 전문 직원을 5명가량 배치해, 전기차 배터리와 구동모터, 연료전지 스택 등 전기차 부품의 상태 평가와 해체 방법 등을 연구할 예정이다.
굿바이카가 지난해 12월 국내 첫 전기차 중고부품 쇼핑몰 ‘이파트(E-PART)’(www.epart.co.kr)를 개설한 것 또한 전기차 재사용·재활용에 대한 관심과 연결돼 있다. 이파트에는 ‘배터리’, ‘모터’, ‘바디’, ‘샤시’, ‘의장’, ‘차량(완차)’ 분야로 나뉘어 물건이 진열돼 있으며, 8일 현재 부품 가짓수 93개, 부품 재고수량은 136개이다. 여기에는 차량(완차) 1대도 포함돼 있다. 콘솔 같은 의장재가 88개로 가장 많고, 배터리 7개, 구동모터 5개도 가격표를 달고 올라 있다. 남 대표는 쇼핑몰에 대해 “아직은 부품 가짓수가 얼마 되지 않고 개별 부품의 판매가 가능한지 테스트해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굿바이카가 전기차 재사용·재활용에 역점을 두려는 것은 “차량을 통째로 파는 일은 드문드문 이어질 뿐이어서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 해체 뒤 물질 단위로 내다 파는 방식으로는 거꾸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후미등이나 전조등을 예로 들면, 신품은 수십만원, 중고품이 5만~10원가량이면, 플라스틱 덩어리라는 물질로 따진 가치는 영(0)원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폐차장 쪽에서 전기차 부품 중 핵심인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을 위한 사업 환경은 조금씩 조성되고 있다.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에 따라 2021년 1월1일 이후 등록된 전기차 소유자는 폐차 때 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 민간의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조처였다. 또 환경부 고시 개정으로 지난해부터는 지자체가 반납받은 배터리의 매각도 책임지게 돼 있다. 그 이전에는 수거·보관만 해왔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맞물려 재사용·재활용에 대한 민간업체의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다.
중고 부품에 대한 수요는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부문에서 더 높을 것으로 남 대표는 내다보고 있다. 가격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같은 헤드램프라도 전기차 쪽 가격이 비싸다. 아직 전기차용 물건의 생산이 덜 되기 때문인지 단가가 높아 (차주 처지에선) 파손 때 중고부품으로 교체할 때 비용을 상대적으로 더 아끼게 되는 셈이다.”
굿바이카는 폐배터리를 셀 단위로 쪼개 소형 에너지 저장장치 ‘파워뱅크’로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에는 이미 나서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는 주로 야외 캠핑용으로 보급했으며, 어선용 파워뱅크를 제작·판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수소전기차 ‘넥쏘’에서 떼어낸 연료탱크. 3개가 한 세트를 이뤄 차량에 장착된다.
남 대표는 “기계적인 해체 관점에선 전기차나 내연기관차에 별 차이가 없어, 안전 플러그를 뽑고 절연 장갑을 끼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 되고 어려울 게 없는데, 부품으로 재사용하려면 어느 단위로 할지, 상태가 어떤지,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수소전기차에서 떼어낸 연료탱크의 용처가 불분명하고, 성능 평가 기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남 대표는 “제조사 쪽에선 새로운 전기차를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어, 사용 후 재사용·재활용에까지 신경 쓰기 어려울 것 같긴 하다”면서도 “정부나 자동차 제조사, 연구기관에서 사용 후 전기차의 재사용·재활용 방안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기초작업 중 하나로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차체의 재질 정보, 주요 부품의 분해·상태평가·재조립 방법 등을 공유해 전기차의 재사용과 재활용을 촉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기차의 각종 부품은 내연기관차 쪽에 견줘 다른 용도로 더 다양하고 유연하게 재사용·재활용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원도 필요한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굿바이카는 수소전기차 ‘넥쏘’의 연료전지 스택으로 이동식 발전기를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양주/글·사진 김영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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