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0%로 올리면서 동시에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고물가 국면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인 만큼 섣불리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으로는 중국발 불확실성으로 국내 물가와 경기 모두 안갯속에 빨려들어가면서 한은 내부에서도 의견 차가 커질 전망이다.
■ “동결 신호 아냐…3.75%까지 인상 가능”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50%로 인상했다. 지난해 총 2.25%포인트를 올린 데 이어 새해에도 인상 기조를 이어간 것이다. 한국 기준금리가 3.50% 이상으로 올라온 건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금리 인상의 배경에 대해 금통위원들은 의결문에서 “물가 오름세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인상으로 앞서 제시했던 최종 금리 예상치(3.50%)에 이르렀음에도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리진 않은 셈이다. 이창용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발표를) 앞으로 금리를 동결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연내 금리 인하를 거론하는 것도 시기상조라고 했다.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도 “(여러 요인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나갈 것”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금통위 내부에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총재는 자신을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린 상황이라고 밝혔다. “3명은 3.50% 수준에서 당분간 동결하고 그 영향을 본 다음에 올릴 가능성을 보겠다는 것이고, 나머지 3명은 앞으로 한달 사이에 3.75%로 올릴 가능성도 열어놓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금통위에서도 신성환·주상영 위원은 금리 동결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총재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총재는 평소 지나친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심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3대 3일 경우에 제가 어떻게 할지는 결정해야 할 때 말씀드리겠다”고만 했다.
■ 중국 탓에 경기 더 나빠지는데…물가는 고공행진
한은이 섣불리 ‘동결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물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아직 크기 때문이다. 경기 둔화로 인한 물가 하락 압력이 점차 커지는 분위기지만,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상승 압력도 만만찮다. 게다가 최근 배럴당 70∼80달러대로 떨어진 국제유가가 올해 다시 100달러대로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한 중국이 하반기부터는 석유 수요 증가세를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은은 올해 경기가 예상보다 나쁠 것으로 본다면서도 물가는 기존 전망치에 부합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중국 경기 등의 영향으로 기존 한은 전망치(1.7%)를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3.6%)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경기 둔화 등으로 인한 물가 하락 압력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상쇄된다고 분석한 것이다. 한은이 당분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한은으로서는 통화정책을 운용하기 한층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특히 ‘제로 코로나’ 정책의 갑작스러운 폐기로 중국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중국 경제의 위축은 전세계 아이티(IT) 업황 악화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국내 타격이 크다. 한은은 이미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하반기부터는 중국 방역 조치 완화의 긍정적 영향이 나타나면서 중국 경기가 예상보다 더 좋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 총재는 “물가와 경기, 금융 안정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교한 통화정책이 있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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