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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나누어 부유해진’ 수도원…중세의 경제서 발견한 지속가능성

등록 2023-02-10 10:00수정 2023-02-10 10:26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 미래가 있던 자리
아네테 케넬 지음 ㅣ 홍미경 옮김 ㅣ 지식의날개 ㅣ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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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우리 모두 가난했다. 그다음에 자본주의가 왔고 지금 우리는 모두 부자이다.” 자본주의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에게 이 문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자명하다. 그런데 독일 만하임대학 중세사 교수인 아네테 케넬은 자본주의 이전 중세 시대에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경제적 풍요로움을 구가한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는 200살이 넘은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 인간의 경제활동을 향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사회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현대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중세 베네딕트수도원은 회칙에서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고 소유라는 악습은 공동체에서 근절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소유 대신 사용’만 허락됐기에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의복과 음식 등 생필품을 공유했다. 자선에 기대지 않고 자급자족하기 위해 수도원 안에서 물건을 생산하며 자연스럽게 시장활동에 참여한 결과 명실공히 성공한 경제공동체가 됐다. 이들의 막강한 경제력은 수도원의 본래 목적과 상충해 존폐 위기를 가져왔지만 수도원을 공유경제의 성공 사례로 만들었다. ‘나누면 부유해진다’는 공유경제의 원리를 입증한 것이다.

또한 중세 사람들은 대표적 공유재화인 호수와 산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조합을 결성했고, 유한한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규정을 만들어 지켰다. 이를 통해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을 피해갔다. 스위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삼국이 인접한 보덴호의 어부조합에서는 특정 어종을 보호하기 위해 그물 재료, 사용 가능한 어살과 낚싯바늘, 금어기, 어획량 제한 등을 규정했다. 스위스 내륙의 알프스 지역 뮐레바흐와 위블리스에는 고산지 목장의 공동 사용시 허용된 가축 수, 사용자 공동체의 구체적인 명시, 가축을 몰고 올라가는 시기와 내려오는 시기 등에 관한 세밀한 규정이 있었다.

리사이클링 기술

20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주어진 자원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능력은 오랫동안 인류의 강점이었다. 버리는 것은 ‘포기’를 의미했는데, 우리 선조는 기존 자원을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 똑똑했다. 중세 유럽 파리의 중고물품 시장은 하루 5만 명이 집을 꾸미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수리하는 직업이 존재했다. 19세기 목재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탄생하기 전 종이는 헌 옷, 헝겊, 낡은 선박 밧줄, 재단사의 자투리천 등과 같은 넝마로 만들었다. 폐품 ‘리사이클링’의 고전적 사례다.

종이 수요가 늘면서 원료인 넝마의 가치 또한 올라가자 넝마 수집에 라이선스가 생겼고 독일 뉘른베르크에서는 ‘넝마 수출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기존 자재의 재활용 기술은 건축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대 사원의 계단 절단석은 벽이나 담을 쌓기에 적합했고 기둥의 밑받침은 속을 둥글게 파서 분수대로 사용했다.

자발적인 무소유와 협력

일체의 소유를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았던 ‘미니멀리스트’로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있다. 당시 프란체스코는 추종자들과 함께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시했고, 곳곳에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다양한 공동체가 생겨나 ‘자발적인 무소유’ 붐이 일었다. 미니멀리즘의 성공은 13세기 상업혁명을 향한 사회의 저항운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상업혁명으로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이들은 외부 요인으로 패자가 된 사회적 약자의 자립을 돕는 데 힘썼다. 항상 더 많은 것, 확장, 이익, 권력의 추구만이 아니라 단순함·자유·협력에 대한 소망도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음을 알 수 있다.

자원 한계, 소비사회 종말, 사회적 불평등, 기후위기 등 오늘날 시급한 문제에 대안이 없다고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19세기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21세기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유하고 교환하고 협력하던 중세 사회를 통해 경제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19세기 경제관념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는 관심 가져볼 만하다.

신경진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편집자 yospirit@mail.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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