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프랑스 파리의 약국 앞에서 코로나19 간이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프랑스에선 해열제와 항생제 등 필수 처방약도 부족해 공중보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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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역대 최악의 의약품 대란이 빚어지고 있다. 일시적으로 재고가 떨어지는 사례는 벌써 몇 년째 늘어나는 추세다. 100단위이던 재고 부족 건수가 2019년 1천 건대로 오르더니, 2020년과 2021년에는 2천 건대로 두 배 뛰었다. 2022년에는 3천 건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것도 중증질환 치료제 몇천 가지 품목만 그렇다. 중증질환 치료제는 복용을 중단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대표 해열제인 파라세타몰 등 다른 의약품의 수급도 불안하다. 그것이 공중보건에 차원이 다른 영향을 끼친다는 게 큰 문제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생제인 소아용 아목시실린은 수급난이 특히 심각해 판매수량이 제한됐다. 이에 따라 환자를 걸러서 처방하는 풍경까지 벌어졌다. 프랑스 건강보험협회연맹에서 의료제품 관련 활동을 맡은 얀 마장은 “방광암 치료제가 부족해 방광을 아예 절제해야 하거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소르본파리노르대학 소속 경제학자 나탈리 쿠티네는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원료인 원료의약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아 원료의약품 생산이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이동제한령, 마스크 의무 착용 등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한동안 주춤하던 겨울철 질환이 다시 유행한 영향도 있다. “몇몇 의약품은 판매량이 감소했다가 최근 급속도로 늘고 있다.”
지금의 의약품 대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약품 품귀의 원인은 이미 몇 년 전 파악됐다.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생산이 따라잡지 못한다. 생산시설은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대형 제약사가 원료의약품 제조공장 등 일부 생산시설을 인건비가 싸고 환경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옮겼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완제의약품의 원료 중 80%가 유럽 바깥에서 생산된다. 대부분이 중국 아니면 인도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변화와 맞물려 생산능력이 일부 지역으로 쏠렸다. 이제는 공장 한두 곳에서 한 약품의 세계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생산 집중화는 보건·안전 관련 규제가 엄격한 제약업계에 약점이 될 수 있다. 한 생산라인에서 문제가 터지면 하나 또는 여러 대륙에서 공급망이 마비되거나 품귀 현상이 빚어질지 모른다. 공장이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생산능력이 집중된 공장이 멀리 있을수록 유통의 위험과 시간은 늘어난다.
의약품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파라세타몰 제조업을 본토에서 되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 남은 공장은 2008년 문을 닫았다. 파라세타몰의 주요 원료의약품 제조공장이 남부 지방 루시용에서 준공을 앞두고 있다. 2024년이나 2025년 원료 유통을 시작할 계획이다. 루시용 공장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하지만 공급이 안정되거나 다른 생산시설이 국내로 이전한다는 신호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공장을 늘리지 않고서는 생산 밀도를 낮출 수 없다. 높은 의약품 생산 밀도가 위험의 원천이다.
제약업계는 프랑스에서 물가가 계속 오르지만 의약품 가격이 너무 낮다고 주장한다. 의약품 회사 단체인 ‘의약품기업들’(Leem, 림)의 토마 보렐 과학사업부장은 말했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제약업계도 에너지를 비롯해 유리병, 종이상자 등 원료와 재료의 가격 상승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업계처럼 생산비 증가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게 되지 않는다. 가격 규제 때문이다. 어떤 제품은 생산비가 판매가격보다 높다.”
이에 얀 마장은 “제약산업이 수익성이 뛰어난 편에 속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시장에서 제약산업이 돈이 안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의약품 품귀는 제약사가 생산을 집중화하고 외주화한 결과다. 제약업은 세계화한 산업이다. 업계 논리가 일종의 협박으로 진화했다. 돈을 더 많이 주는 나라에 약을 먼저 주는 식이다.”
수급이 어려운 약품의 종류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출시가 몇 년 된 ‘오래된 약’이라는 점이다. 그중 다수는 특허기간이 끝나 가격이 내려갔다. 2012~2018년 조사에 따르면 시장에서 판매된 지 10년 넘은 의약품이 전체의 3분의 2였다. 제약업체는 이를 생산 전략 전환의 구실로 삼는다. “특허권이 만료된 제품을 생산하는 모델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토마 보렐은 말했다.
프랑스 사회보험공단이 의약품 구매비 환급에 쓴 재정은 몇 년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이 지출에서 몇몇 신약에 나가는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특히 크다. 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 약 1만5천 개 품목(도시 약국 기준) 가운데 60여 품목에 쓰인 환급액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제네릭(복제의약품) 가격을 끌어내리면 될까? 테바(Téva)나 바이오가랑(Biogaran)과 같은 제네릭 제조업체와 사노피(Sanofi)나 화이자(Pfizer)처럼 특허로 보호받는 제품을 만드는 대형 제약업체가 수익을 내는 방식은 다르다. 복제약 제조업체는 지금 프랑스가 겪는 의약품 대란의 책임이 크지 않다. 대형 제약사 탓이다. 의약품 대란을 해소하려면 공공과 제약업계의 역학관계를 바꾸는 게 먼저다.
쥐스탱 들레핀 Justin Delépine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1월호(제430호)
Pourquoi l’Hexagone manque-t-il de médicaments?
번역 최혜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