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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윤경림 차기 CEO 후보 ‘모든 수단 동원’…KT, 민간기업으로 거듭날까

등록 2023-03-09 18:20수정 2023-03-10 02:47

APG 주주제안 수용·대통령 측근 줄줄이 영입
“정부·여당 압박 넘고 주총 표대결 선제 조치”
‘바람 예보에 미리 눕던’ KT 달라질까 주목
케이티(KT)광화문빌딩 이스트(앞쪽건물)와 케이티 광화문빌딩 웨스트 전경. 연합뉴스
케이티(KT)광화문빌딩 이스트(앞쪽건물)와 케이티 광화문빌딩 웨스트 전경. 연합뉴스
케이티(KT)가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차기 대표이사(CEO) 후보로 확정한 이후 자사주를 취득하거나 우호 지분 확보 목적으로 다른 기업과 주식을 맞교환해 ‘상호주’를 형성할 때는 주총을 열어 승인을 받는 쪽으로 정관을 변경하는 것 등 네덜란드 연금투자회사 에이피지(APG)의 주주제안 가운데 일부를 수용하기로 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 측근과 동문을 잇따라 사외이사와 케이티 계열사 대표로 영입했다.

케이티가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확정했다가 ‘셀프 연임’ 내지 ‘깜깜이 경선’ 논란 끝에 백지화하고 다시 진행하기를 반복하다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개입 사태까지 부른 가운데, 주주 친화 경영과 대통령 측근·동문 영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부·여당의 개입을 넘어서고 주총 표대결서 승기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케이티는 민영화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바람 예보만 있어도 미리 눕는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정부·정치권에 알아서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왔다.

경제개혁연대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케이티가 에이피지의 정관 변경 제안 일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케이티는 자사주 보유 목적과 소각·처분 계획을 해마다 정기주총에 보고하고, 자사주를 이용해 다른 회사 주식을 상호주 형태로 취득하기에 앞서 주총 승인을 거치는 쪽으로 정관을 변경할 지 여부를 오는 31일 열리는 정기주총서 논의할 예정이다.

상호주 거래란 상장기업이 자신의 주식을 상대 기업이 소유하게 하고, 그 대가로 상대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는 걸 뜻한다. 케이티는 지난해 9월 전체 지분의 7.7% 가량인 745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넘기고 같은 규모의 두 회사 지분을 취득했다. 또한 올해 1월에는 케이티가 신한금융지주 주식 4375억원어치를 사들이는 대신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신한은행이 케이티 우호 주주 구실을 해오던 일본 엔티티도코모 소유 주식을 같은 액수만큼 인수했다.

상호주 거래 때마다 케이티와 상대 회사들은 ‘사업 협력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주인 없는’ 회사 케이티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다른 기업과 맞교환해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경영진에 유리한 우호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케이티와 상호주를 형성한 기업들은 ‘이번 케이티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냐?’는 <한겨레>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밝혔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케이티가 자사주 보유 목적과 소각·처분 계획을 주주총회에 보고하고, 상호주 취득 시 미리 주총 승인을 거치는 쪽으로 정관을 변경하기로 한 것은 국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향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이같은 절차적 통제가 가능해지면, 더이상 우호 지분 확보를 목적으로 함부로 자사주를 활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이티 새노조는 “회사가 자사주를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와 최고경영자의 연임 목적 등에 활용하는 순간 일반 주주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의결권이 줄어들뿐 아니라 주식가치 또한 낮아지는데,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이티 안팎에선 케이티가 에이피지의 주주제안 일부를 수용하기로 한 것을 두고 ‘파격적’이란 평가와 함께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승인받을 정기주총을 앞두고 여당과 대통령실 등의 압박을 차단하는 동시에 주총 표대결 구도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케이티는 윤 후보 확정 이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 후보 확정 다음날인 8일에는 차기 대표이사 후보 요청으로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발표했다. 또 같은 날 윤석열 대선 캠프 상임경제특보 출신의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사외이사 후보 명단에 올렸다. 또한 9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충암고 동문인 윤정식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을 케이티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 후보로 내정했다.

케이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직 임원은 “윤경림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정부·여당의 압박과 주총 표대결 구도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전력질주하는 모습”이라며 “차기 대표이사 후보 번복 사태로 회사가 입은 상처가 크지만, 케이티와 윤 후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는 케이티가 진정한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케이티 관계자는 “윤 후보가 좀더 파격적인 주주친화 경영 행보와 함께 인적 쇄신을 통해 ‘구현모 아바타’ 이미지를 벗겠다는 의지를 내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쪽도 이런 관점에서 케이티가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차원에서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도입하라는 에이피지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아쉬워한다. 케이티는 이번 제안의 배경이 된 현대차·현대모비스 상호주 취득 목적과 자사주 교환 거래의 적정성, 보유 필요성 및 향후 계획을 재검토해 자율공시하겠다고 밝혔다.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란 주주총회 결의 대상 안건이 아닌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도 주주들이 의견을 낼 통로를 마련하는 걸 뜻한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만약 케이티가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도입하면 주주들이 상호주 취득이 기업 가치나 주주 가치를 올리는 데 부합하는지, 그 규모는 적정한 수준인지 등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고, 기후변화 등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이에스지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게 될텐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에는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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