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4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같은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며 차액결제 담보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차액결제 담보비율이란 한국은행이 은행간 차액결제 실패를 대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놓는 담보증권의 비율이다.
이 총재는 14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가 “숙제를 줬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디지털뱅킹이 젊은 층에 잘 보급된 만큼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미국보다 예금 인출 속도가 더욱 빠를 것”이라며, “차액결제 담보 비율을 높여야 한다. 예전에는 은행이 문을 닫고 예금을 분산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이제는 며칠이 아니라 수시간 내에 돌려줘야 한다. 한국은행과 감독 당국에게는 새로운 숙제”라고 말했다. 차액결제시스템은 은행끼리 하루 중에 오고간 소액자금 결제를 미뤄뒀다가 거래 마감 후 다음날 차액을 한번에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정산 전까지 신용리스크 부담이 있어 이를 관리하기 위해 한은은 하루 순이체한도의 일정 금액을 담보증권으로 받고 있다. 특정 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면 차액결제 실패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이 총재는 다만 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한국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70%인 차액결제 담보비율은 올해 2월부터 2025년 2월까지 단계적으로 100%로 인상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커지면서 인상 시점이 두 차례 연기돼 올해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올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3.50%에서 동결하며 시장의 연내 금리인하 기대감을 일축했던 이 총재는 이날도 유사한 발언을 내놨다. 그는 “연말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물가가 한은의 예상 경로대로 가는 것이 숫자로 확인된다면 “입장을 바꿀 것인지 생각해야겠지만 아직은 확신하기에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앞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금융시장 반응에 대해 금통위원들은 “시장의 기대가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었다. 그는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금의 금리 수준이 자동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줄일 만큼 긴축적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지 않다. 원유 가격이나 미국의 통화정책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말했다. 또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드는 신호가 보인다면 시장에 확실히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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