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위협누리엘 루비니 지음 ㅣ박슬라 옮김 ㅣ 한국경제신문 ㅣ 2만5천원
출간계약을 마쳤을 때는 ‘잘됐다’ 싶었고, 편집 중에는 다소 불안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인쇄를 앞두고는 그사이 이자까지 붙은 걱정이 어깨를 짓눌렀다. 늘 그렇듯이 새로 낸 책이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지만, 저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 때문이다. “
바람만 불어도 세상 망한다고 하는 분.” 저자 인터뷰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현재 많이 언급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조롱도 많이 당하는 인물인 누리엘 루비니 , 그리고 그의 책 <초거대 위협> 얘기다 .
하지만 최근 다른 생각을 조심스레 하게 된다. ‘닥터 둠’이라는 별명처럼 위기를 말하지만, 책 내용은 단순히 직감에 따른 경고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폭락’ 같은 단어로부터 잠시 떨어져서 보면, 이 책은 얼굴 붉히며 쓴 묵시록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자료에 근거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분석서로 읽을 지점이 많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이 저자에게 쏟아지는 ‘고장 난 시계’나 ‘과한 비관주의자’ 등의 조롱과 비판에 나름의 변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기대를 해보는 것도 사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잘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학 교수는 13년 만의 신작(원서 기준으로 12년)에서 오늘날 전세계에 나타나는 10가지 위기 현상을 논한다. 부채 축적, 인플레이션, 고령화, 미-중 갈등, 인공지능(AI)의 위협, 환경위기 등이다.
먼저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채와 인플레이션을 보자. 2023년 현재 이 두 가지가 세계경제의 판도를 결정지을 뇌관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다 아는 증상의 원인과 과정을 저자는 파고든다. 1930년대 대공황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당시의 모습과 이후 대응 등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며 현상을 진단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은 맞춘다”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특히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실책을 저질러온 미국 연방준비제도( 연준)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저자는 많은 부채와 인플레이션이 얽힌 지금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부채를 줄이면 성장이 둔화한다. 금리를 올리면 기업과 은행, 노동자와 정부가 빚을 상환하느라 허덕인다. 가만히 있으면 물가는 계속 치솟는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적어도 부채는 높지 않았다. 1999년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0% 수준이던 세계 부채는 2021년 350%를 넘어섰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시경제의 역사와 금융체제 전반을 포괄하는 거장의 통찰에 새삼 놀라게 되는데, 수리모델에 기반하지 않기에 약간의 집중력만 발휘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준이다. 앞서 언급했듯 방대한 기록과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져가며 주장을 펼친다. 또한 1980년대부터 학계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 등에서 일하며 겪은 일화가 생동감을 더한다.
고령화와 인공지능을 다룬 부분에서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연금, 챗지피티(ChatGPT)와 관련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미-중 관계가 현재에 이르게 된 경위와 미-중 갈등의 현안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미-중이 각자의 동맹국과 맺은 관계를 공고히 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달러화-위안화 경쟁과도 맥을 같이하는데, 최근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가격을 위안으로 책정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열풍을 탈중앙화 금융 현상, 통화 불안과 엮어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사안 10개로 장이 구분돼, 순서와 관계없이 관심 가는 곳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루비니는 책 말미에서 경제성장과 초국가적 협력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자신 역시 그것에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는 것이 망설이는 것보다 낫다고 역설한다. 현실을 깨닫게 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것, 이 책의 목적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종오 한경BP 편집자 jokim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