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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미·중 외교 균형잡고 여성 부총리 뽑아라’…원로 경제관료들 쓴소리

등록 2023-05-21 11:43수정 2023-05-22 09:51

역대 경제부총리 등 31명 인터뷰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중국과 등지지 말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부의 산업 정책을 대폭 강화하라…여성의 육아·가사 부담을 해방시키고 불평등 문제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역대 경제부총리와 장관 등 지난 60여년간 한국경제를 이끈 원로 경제관료 31명이 윤석열 정부에 쏟아낸 쓴소리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오는 25일 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기획재정부 유튜브에 공개된 31명의 93분짜리 인터뷰 영상 발언록에는 선배 관료들의 경험과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로 박근혜·이명박 보수정부에서 장관급 경제관료를 지낸 사람들로, 지금은 과거와 같은 정부 주도 성장이 더는 유효하지 않지만 여전히 국가 경제정책에서 불평등과 기후변화 대응 등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일한 현정택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은 이번 인터뷰에서 “미·중 공급망 분리에 현실적으로 적응하는 방법은 미국과 중국의 생산 체제를 어느 정도 유지하며 조화롭게 나아가는 것”이라며 “미국과 협조를 유지하고 중국과도 경제 관계를 활용해 유연하게 충격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전 수석은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많이 방문하고, 일본도 (겉으로는) 중국과 싸우는 것 같지만 우리보다 더 (돈독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이들의 정치를 상당히 참고하고 (중국과) 공유와 협조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중 관계에서 경제적 실리를 고려해 한쪽에 쏠리지 않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과거처럼 우리가 중국 경제 특수에 의존해 우리 경제를 꾸려 나가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다”면서도 “공급망 전환 과정에서 탈중국 하는 기업들을 우리가 유치하고 소비재 시장으로서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삼아 제조업 중간재를 수출하던 기존 무역구조를 중국 자체 시장을 겨냥한 소비재 중심으로 바꾸자는 권고다.

현 정부의 ‘작은 정부, 민간주도 성장’ 기조를 반박하는 견해도 있었다. 현오석 전 부총리는 “최근 국제 경제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정부 차원의)산업정책 부활”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이 과거에 그렇게 반대했던 산업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안보 측면의 중요성이 커진 반도체를 비롯한 탈탄소, 디지털, 핵심 자원 산업분야 등에서 정부가 정책을 이끌며 국익을 우선해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특히 기후변화 대응은 정부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빌 게이츠도 책에 자기가 여태까지 정부 개입이 없어야 민간의 창의가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정부 역할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썼다”며 “기후변화와 관련해선 정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전 수석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지금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들썩이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 투자를) 민간에 맡긴다고 그냥 놔두면 우리가 엄청난 큰 신산업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탄소 전환 정책의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시장에 인센티브를 줘 민간 투자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둘러싼 난맥상도 꼬집었다.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독일은 히틀러 때 주 몇 시간 일하는 걸 한 적 있고 그 이후로는 ‘근로시간법’으로 바뀌었다”며 “우리도 엠제트(MZ)세대 요구에 맞춰, 주 몇 시간 일하는 걸 자꾸 하지 말고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걸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이 한국의 ‘주 52시간제’와 같이 별도의 주 단위 법정 기준 노동 시간 규정을 두지 않고, 연장노동(2시간) 포함 하루 1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게 법으로 제한한 것을 참고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제대로 보장하자는 뜻이다.

원로 관료들은 한목소리로 저출산·고령화를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로 지목했다.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 가족계획 사업을 담당했던 정재룡 전 통계청장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덴마크에서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서구 주요 선진국들이 다 합계출산율이 떨어져서 인구 절벽을 경험했다”며 “당시 여러 선진국들이 다 재정 지원으로 출산율을 해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재정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100%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여성 인력들을 육아 부담과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생산가능인구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내각 구성부터 바꿔야 한다. 경제부총리나 한국은행 총재 같은 건 남자들보다 여성들이 더 잘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내각의 여성 장관은 여성가족부(김현숙), 중소벤처기업부(이영), 환경부(한화진) 등 3명뿐이다.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도 “이민은 어려운 문제이고 한계가 있다”며, “여성, 60∼65세에 퇴직한 노령인구 등 기존에 있는 노동력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재룡 전 통계청장(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정재룡 전 통계청장(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기획재정부 유튜브). 기획재정부 제공

경제 정책의 근간을 재검토하자는 묵직한 화두도 던졌다. 1969년에 입직해 참여정부 장관급에 이르기까지 35년간 공직 경험을 가진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실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 이제 한계에 온 것 같다”며 “최근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 교수도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능력주의야말로 불평등을 심화시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파괴하고 있다고 얘기한다”고 설명했다. 태생적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외부 환경, 개인의 능력 및 경험치 등이 다른 상황에서 능력에 따라 보상하는 현행 체제가 계층 간 격차를 벌리고 불평등도 갈수록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이 전 실장은 “문제 제기는 곳곳에서 하는데, 능력 있고 가진 자가 배려하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는 등 추상적인 답밖에 없는 것 같다”며 “사회적 합의를 모으기 위해 지식층이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우리가 많은 발전을 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삶의 기회나 삶의 질이 좋은 세상을 만들었느냐 하는 부분에선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실업 안전망이라든가 사회 안전망을 좀 과감하게 높여야 한다. 시장 경제는 따뜻함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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