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론 머스크(테슬라)와 제이미 다이먼(JP모건 체이스) 등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최근 요란하게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등을 방문한 것과 달리 중국 내 전략생산 기지를 둔 국내 주요 기업인들의 행보는 조용하다. 중국을 방문해도 중국 내 사업장은 찾지 않는 등 미국을 자극할 만한 대외 활동은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일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의 공개 일정을 <한겨레>가 확인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중국을 찾은 이는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두 명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3월 중국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기업의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성과 측정’ 세션 축사를 했다. 최 회장은 2019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서해를 넘어갔지만 중국 우시와 다롄의 에스케이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장은 찾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톈진의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하고 천민얼 톈진시 서기와 면담을 비공개로 진행했지만 시안과 쑤저우에 있는 반도체 공장은 찾지 않았다. ‘잠행’에 가까운 방중 행보였던 셈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나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등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회사 쪽은 밝혔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이런 행보에는 미-중 갈등에 따른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놓칠 수 없지만, 미국 정부가 외교·안보와 밀접하게 관련된 첨단산업(인공지능·반도체·양자 컴퓨터)에 대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미국 쪽에 쏠린 현 정부의 외교 방향도 중국 사업장을 둔 국내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힌 측면도 있다. 엘지 그룹은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광저우의 엘지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9월 유튜브(삼프로TV) 인터뷰를 통해 “지정학적·지경학적 이슈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과 중국이 얼마나 더 싸우고 어디까지 싸울 것인가도 문제”라고 말해 이러한 고민을 내비친 바 있다.
다만 미국 주요 기업인들이 앞다퉈 중국을 방문해 사업장을 활발히 챙기는 와중에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이를 두고 보고만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계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기업 입장에선 여기도 쳐다봐야 하고, 저기도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생각하는 바대로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깊이 갈 수 없다는 것을 미국 안팎에서 인지하고 배워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인들도) 이제 너무 움츠러들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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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시장과 공급망을 갖춘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한국 기업 입장에선 이같은 미-중 갈등의 파고가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 대비해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 전문가인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학부)는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지 말고, 미국 때문 내지는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입장에서 대중 관계를 어느 선까지 가져가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찾아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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