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통신용 칩 장기계약 체결을 강요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의·제재 절차가 재개된다. 브로드컴이 공정위의 제재 결정에 앞서 자진 시정을 하겠다며 지난해 제출했던 시정거래 질서 회복과 피해 구제 방안(동의의결안)에 대해 공정위가 “불충분하다”며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다.
공정위는 지난 7일 전원회의를 열어 브로드컴 인코퍼레이티드 등 4개사의 거래상 지위 남용 건과 관련한 최종 동의의결안을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동의의결이란 사업자가 제안한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에 대해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타당성을 인정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 짓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스마트기기 부품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TA) 체결을 강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 설명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2021년 1월1일부터 2023년 12월31일까지 브로드컴의 스마트기기 부품을 매년 7억6000만달러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 금액이 7억6000만달러에 못 미치면 차액만큼을 브로드컴에 배상해야 했다. 앞서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신고를 받은 공정위는 조사 끝에 브로드컴에 거래상 지위남용을 적용해 지난해 1월 심사보고서를 상정했다. 그러나 같은해 7월 브로드컴이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하며 시정방안에 대한 이해관계자 수렴 등의 절차가 이어졌다.
브로드컴과 공정위가 협의를 거쳐 올 1월 공개된 잠정 동의의결안에는 부품 공급계약 체결 강제 금지 등 거래질서 회복, 반도체·정보통신(IT) 분야 전문인력 양성 및 중소사업자 지원을 위한 200억원 규모의 기금 조성,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술지원 3년 확대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끝에 공정위는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술지원 확대 방안이 무상이 아니라 유상이라는 점 등 삼성전자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기에 적절한 방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전자 역시 브로드컴의 시정방안에 금전 피해 구제 방안이 빠져있다며 수긍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고려했다. 공정위는 연내 전원회의를 열어 브로드컴에 대한 제재 수준 등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브로드컴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이제 자사의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삼성전자의 거센 반발에 동의의결안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개시 신청 자체를 기각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개시 결정 뒤 최종 동의의결안을 전원회의에서 기각한 것은 2011년 제도 도입 뒤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의의결 개시 심의 당시에는 브로드컴이 삼성전자를 위한 추가 조처를 협의할 의향이 충분히 있다고 했기 때문에 절차를 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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