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종합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인정보위)는 2020년 8월에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됐다.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가 나눠 수행하던 개인정보 보호 업무는 모두 개인정보위라는 ‘콘트롤타워’ 아래 일원화됐다. ‘개인정보’의 영토에는 데이터, 보안, 플랫폼, 빅테크, 인공지능 이슈까지 몰려있다. 19일 오후 서울정부청사 4층 집무실에서 만난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역사적 과도기라 여러 분야에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고 위원장은 서울대와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국제무역을 연구한 경제학자이자 인공지능을 연구한 법학자이기도 하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 시절에 서울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를 만들었고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그는 “인공지능 시대 국제 규범 논의에서 한국은 눈에 띄는 ‘핵인싸’ 그룹”이라며 “오는 23일 주요국 감독기구 수장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국제 규범에 대한 공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법학자로서 인공지능에 대해 일찍부터 연구해왔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개인정보 보호 영역에서 고민거리가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알파고 등장을 보고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필요를 느껴 연구해왔다.
― 데이터를 다 빨아들이는 인공지능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가 가능할까?
“역사가 지난 다음에 보면 지금이 상당한 과도기로 비춰질 것이다. 20세기적인 법의 틀은 상당 부분 아날로그 세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디지털 세상이 본 무대가 되는 세상으로 바뀐다. 유럽에서 개인정보보호법(GDPR) 만들 당시만 해도 교회에서 손으로 써낸 교인들의 개인정보 처리가 토론 주제였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는 데이터 규모나 처리 수준이 비교도 안된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가?
“챗지피티같은 거대 언어 모형은 일단 열려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최대한 데이터를 끌고오는 방식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규율 체계의 큰 틀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 인공지능 규제의 국제 논의에서 한국은 어떤 입장인가?
“올해들어 국제 공통 규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해 일종의 ‘규범 경쟁’ 같은 모습도 보인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정보기술 인프라와 개인정보 법제 등을 갖춰 소위 ‘핵인싸’ 그룹에 들어가있다. 앞으로 한국 입장이 국제적 논의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는 23일에 인공지능 시대 데이터의 규율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연다. 영국·독일·일본 등 주요국 감독기구 수장과 첫 공개 토론을 시작할 것이다.”
― 챗지피티(ChatGPT)는 최신 버전의 데이터 크기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챗지피티를 이해하기 위해 오픈에이아이(OpenAI)에 몇 차례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았다. 오는 7월에 발표할 예정인 인공지능 데이터 정책 방향 관련해서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의 의견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개인정보 감독기관들이 모여 챗지피티의 데이터에 대해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유럽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논의의 장을 넓히자고 제안하고 있다.”
― 7월 발표는 뭔가?
“데이터 맥락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정책 방향을 발표할 계획이다. 데이터 역할과 위험성을 분석하고 새로 개발된 인공지능 기술이 전세계에 거의 동시에 제공되고 있는만큼 국제적 협의체계가 중요하며 새로운 법체계의 마련이 혁신을 막지는 않도록 해야한다는 등의 기본 방향을 정리할 예정이다.”
― 최근 국가간 개인정보 국외이전에 대한 압박도 큰 것으로 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체계에서 데이터 분야는 (슬쩍)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이 개인정보 국외 이전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과도기이니만큼 국경간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이라는 대원칙 아래 우리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침해될 가능성을 고려해 주의를 기울여 판단해야 한다.”
― 개인정보위가 오픈마켓의 계정 도용 문제에 내린 과태료 처분에 네이버와 지(G)마켓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이 있다. 거대 플랫폼이 판매자나 제3자 등에게 개인정보를 넘기고 여기서 유출이 일어날 경우 책임을 미루는 경우를 어떻게 봐야하나?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데이터가 누구로부터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정해진다. 큰 틀에서 시스템을 만드는 쪽에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개인정보위는 민관협력 자율규약을 마련하고 있고 오픈마켓 플랫폼과 판매자 사이에 안전한 개인정보 처리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만 전송하도록 응용프로그램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법(API)의 표준까지 마련했다. 필요없는 정보는 보관조차 하지 않는 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 개인정보위의 조사 인력이 많지 않다
“조사 인력이 31명밖에 없어 발빠른 조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챗지피티 등 거대 인공지능을 내놓는 글로벌 빅테크들을 어떻게 조사해나갈지 고민이 깊다.”
― 개인정보위가 기준을 세워야 하는 영역도 증가하고 있는데?
“주말마다 각종 논문을 구해 읽으며 고민을 한다. 생각보다 개인정보나 정보주체에 대한 연구가 적어 아쉽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추구해나갈 가치가 있다면?
“학창시절엔 풍물과 탈춤을 배웠고 내 한복을 갖던 날을 잊지 못한다. 미국 변호사로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이유다. 한국인으로 살며 국익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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