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지난해 회의와 견줘 규모와 비중 모두 대폭 축소됐다.
임기 첫해였던 지난해 7월 재정전략회의는 최초로 지방 국립대인 청주 충북대에서 개최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 이수만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 곽노정 에스케이(SK)하이닉스 대표이사, 하정우 네이버 에이아이(AI)랩 연구소장 등 민간·학계 인사 9명도 불러 모았다.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는 회의 전날 주요 내용을 언론에 사전 브리핑까지 했다.
그러나 올해는 청와대로 장소를 옮기고 사전 브리핑도 생략했다. 재정 분야 최고위급 의사결정 회의의 힘을 쫙 뺀 셈이다. 논의한 내용도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존 건전재정 기조를 계속 고수한다는 게 주된 뼈대를 이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일각에서 여전히 재정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빚을 내서라도 현금성 재정 지출을 늘려야 된다고 주장한다”며 “전형적인 미래 세대 약탈이고 단호히 배격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회의에서 건전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재정준칙 법제화 방침 등을 밝힌 것의 재탕이다. 발언 수위만 더 높아졌다.
1년 사이 재정 여건은 확 달라졌지만 이런 변화는 논의의 중심에 오르지 않았다. 법인세 등 감세와 경기 둔화, 기업 실적 악화 등으로 당장 올해 정부의 국세 수입만 목표치(400조5천억원) 대비 30조~40조원 덜 걷힐 판이다. 그 대신 윤 대통령은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구멍 난 재정을 어떻게 수습할지 뾰족한 해법 없이 관료들에게 기존 예산을 감축하라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이런 사정을 보며 재정전략회의 자체가 기능을 잃고 빛바랬다는 평가가 많다. 내용은 없고 뼈대만 남았다는 의미다.
앞서 참여정부 때인 2005년 신설한 재정전략회의(옛 국가재원배분회의)는 정부가 중기적 시계에서 국민에게 걷은 세금을 전략적으로 계획해 쓰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특히 향후 5년의 재정 상황을 내다보고 복지 등 핵심 분야별 예산 총액을 정하는 ‘총액배분 자율편성’(톱다운) 예산 제도가 이때 마련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장관들이 1박2일 동안 끝장 토론을 하며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격론을 벌인 일화도 유명하다.
특히 지금은 고령 퇴직자 급증에 따른 노인 빈곤 심화, 탄소중립 대응 등 어느 때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이런 분야는 민간에만 맡길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선제적으로 재정을 통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날 정부 논의에서는 국방·법 집행 강화, 약자 보호, 미래 성장 동력 확충 등 추상적인 구호 외에 이러한 중장기적인 밑그림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약자 복지와 관련해 “다문화 가정 아동, 은둔형 고립 청소년 등 새로운 복지 수요에 대한 실태 조사를 거쳐 사회 서비스를 촘촘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외려 재정 운용의 단기적인 불확실성마저 큰 상황이다. 올해 불거진 세수 악화 문제가 내년 이후에도 이어지며 당장 내년도 예산 편성조차 지출 압박 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내년 세수도 올해 연간 세수에서 많아야 3~4% 정도 늘어나는 데 불과할 것”이라며 “내년에 세수가 올해 대비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정세제위원장)는 “정부가 적자 재정 없이 불요불급한 재원을 아껴 꼭 필요한 곳에 쓰겠다고 하면서,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줬던 재원을 국방 등으로 돌리는 등 서민·중산층만 더 어려워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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