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과다 배출 기업이 구매해야 하는 배출권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져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에선 환경 규제 강화로 배출권 가격이 껑충 뛰고 있지만 한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 배출권 가격 하락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체 투자 의욕을 떨어뜨린다.
윤여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8일 펴낸 ‘배출권 거래제의 시장 기능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상당한 수준으로 강화됐지만 배출권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며 “가격 기제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을 통한 감축 목표의 효율적 달성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에서 2015년에 도입·시행중인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정해 배출권을 발행하면 기업들은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구매해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제도다. 경매를 통한 유상 할당 또는 무상 할당받은 배출권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업체는 초과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구입해 제출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태료·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그런데 국내 배출권 가격은 2020년 이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 조정되면서 빡빡해진 탄소배출 규제를 지키기 위한 기업들의 수요 증가로 유럽연합과 뉴질랜드에서 배출권 가격이 2∼3배 이상 뛴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의 지난해 12월 배출권 가격은 1톤(t·배출권 1장)당 11.84달러로 2019년 12월(35.43달러)에 견줘 66.6%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연합은 26.97달러에서 91.38달러로 238.8% 급등했다.
윤 연구위원은 “배출권 가격이 낮게 유지되면 참여 업체들이 온실가스 감축 설비나 기술에 투자하기보다 배출권을 구매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당한 수준으로 상향된 상황에서 배출권 가격이 오히려 하락한다는 건 배출권 거래제의 가격 기능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배출권 가격 하락 원인으로 ‘이월 제한’ 제도를 꼽았다. 기업들의 배출권 사재기를 막기 위해 올해 쓰고남은 배출권 가운데 다음 해로 이월하는 물량을 규제하는 것인데, 올해는 배출권 순매도량의 2배, 내년부터는 1배까지만 이월을 허용한다. 이 규제가 기업의 배출권 구매 수요를 줄이고 당해년도 매도 물량을 늘려 배출권 가격 하락을 부추긴다는 얘기다. 윤 연구위원은 “배출권 이월 제한을 조속히 완화하고, 이월 제한 완화에 따른 공급부족에 대비해 계획된 예비분을 공급하는 시장안정화 제도 도입, 경매 참여 대상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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