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홍콩 중심가의 한 전광판에 항셍지수가 나오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하나은행이 2년 여 전 판매한 주가연계증권(ELS)에서 40억원의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은 200명을 웃돈다. 이 상품은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가 만기까지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국내 금융회사에서 판매된 주가연계증권과 유사상품들이 대부분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데다, 이 지수가 계속 약세를 보이는 터라 투자자들의 손실 규모는 앞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케이비(KB)국민·우리·신한·하나·엔에이치(NH)농협 자료를 보면, 하나은행에서 지난 2021년 판매한 홍콩에이치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이엘에스를 자산으로 편입한 주가연계펀드(ELF) 10여개에서 이달 40억3천만원 규모의 원금 손실이 확정됐다. 투자 원금 103억원 중 39.1%가 손실 처리된 것이다. 투자자는 모두 242명이다.
이엘에스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개별 주식이나 주가지수가 만기까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면 원금에 약정이자를 챙길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통상 1∼3개의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구성한다. 만기 전이라도 중도상환 시점에 일정 수준(투자 기준시점 가액 대비 90∼80%) 이상으로 기초자산 가격이 유지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대개 만기에 기준 시점 대비 40% 이상 가격이 하락하면 원금 손실을 입게 된다. 은행들은 이엘에스를 펀드(ELF)나 신탁(ELT) 형태로 판매한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중 50개 우량 종목으로 구성된 홍콩에이치지수는 변동성이 높아 고수익을 추구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널리 쓰인다. 문제는 이 지수가 지난 2021년 2월17일 연중 최고치(종가 기준)인 1만2228.6까지 오른 뒤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들어선 6000∼7000 수준이다. 국내 판매된 이엘에스와 관련 유사 상품은 주로 홍콩에이치지수가 고점을 형성하던 시기에 무더기로 팔렸다.
이런 까닭에 홍콩에이치지수가 앞으로 크게 반등하지 않는 이상 국내 판매된 이엘에스와 유사 상품에서 확정되는 손실 규모가 크게 불어날 수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은행권에서만 약 13조5776억원 규모의 홍콩에이치지수 기초 이엘에스가 만기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올해 하반기에 81억원, 내년 상반기 중 9조371억원이 만기에 이르며, 내년 하반기 만기에 이르는 상품 규모는 4조5405억원이다.
홍콩H지수 추이. 7월31일 네이버 화면 갈무리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 미상환 이엘에스 잔액은 67조4천억원이며, 이 중 원금 손실구간에 진입(녹인·knock-in 발생)한 물량은 약 7조1606억원이다. 대부분 만기가 내년 이후다. 만기 이전까지 홍콩에이치지수가 투자 기준 시점의 60∼70% 이상까지 회복되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원금 손실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홍콩에이치지수의 행배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통 만기 때 기준가액의 60% 이하면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에 내년 1∼2월까지 홍콩에이치지수가 7000 아래면 손실이 나는 상품이 추가로 나올 전망”이라며 “다만 2021년 3월 이후 발행된 이엘에스는 지수가 6000 밑으로 폭락하지 않는 한 원금 손실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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