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이 8월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인터뷰를 하기 앞서 사진기자 앞에 섰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정부의 ‘태양광 때리기’와 ‘원전 올인’으로는 현재의 에너지 복합위기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
석광훈(53)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지난달 28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한전·가스공사의 막대한 누적적자,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아르이100(RE100) 이행 차질, 태양광과 원전의 충돌로 인한 전력망 관리의 어려움을 3대 에너지 복합위기로 규정하면서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그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는 요금 정상화로 풀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공기업 수직독점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선진국처럼 한전의 발전·소매판매 부문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부가 에너지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 전문위원은 또 “RE100 이행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공존이 힘든 상황에서 원전 확대는 바보짓이고, 지역별 요금차등제 도입 같은 전력망 유연성 강화로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전 누적적자 내년초 60조 육박…예산 10% 가까워질 판
―한전 누적부채가 올해 상반기 200조원을 넘었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적자도 47조원에 이른다. 가스공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미루면서 원가에 미달하는 가격으로 팔아왔기 때문인데, 어느 정도 심각한가?
“내년 1분기에는 한전 누적적자가 60조원에 달할 것이다. 올해 정부 예산의 10%에 육박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한전 적자 수천억원을 보전해 준 적이 있다. 왜 요금을 정상화하지 않고 경영을 왜곡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도 구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제2의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몇차례 전기요금 인상과 원료가격 하락으로 한전이 3분기부터는 역마진 구조에서 벗어났는데.
“변수가 많다. 사우디가 원유생산을 줄이면서 이미 유가가 오르고 있다. 호주에서는 천연가스 수출터미널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다. 천연가스 수송로인 파나마운하에서는 최악의 가뭄으로 운하통과가 지체되고 있다. 프랑스는 원전결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전력 성수기인 연말연초에 전력부족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은 가스 가격이 낮지만 곧 이 모든 위험요소가 반영될 것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개선될 가능성이 작다.”
―사정이 어려워도 제2의 IMF 위기는 너무 과한 표현 아닌가?
“이집트 사례를 보자. 이집트는 전기·가스·석유를 모두 국가독점형태로 공기업이 운영했다. 2013년 국제 고유가 상황에서 요금 정상화를 안하고 원가 이하로 팔다가, 22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집트 정부 예산의 20% 규모였다. 결국 IMF에 구제신청을 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차례 한전 적자를 경험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경쟁체제 전환, 요금 정상화 필요…에너지 빈곤엔 복지로 대처해야
―전기는 ‘공공재’라며,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기는 공공재가 아니라 희소한 시장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공기업이 전력·가스를 국가독점체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20~30년 전에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또 전기·가스요금 할인은 소득 역진성(소득이 높을수록 실질 세율이 낮다는 뜻)이 매우 강하다. 이집트가 구제신청을 했을 때, 세계은행이 조사했는데 소득 상위 20%에 대한 요금할인 혜택이 하위 20%보다 8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할인 효과는 어떤가?
“대표적인 할인 대상이 농사용 전기다. 2020년 기준 할인 규모가 1조4천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전체 200만 농가(계량기 기준) 가운데 8천호(0.4%)에 불과한 기업농(계약용량 300kW 이상)에 할인 혜택의 40%가 집중됐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비용을 한전에 떠넘기면서 오히려 빈부격차를 키우고 있다.”
―한전 적자는 요금 정상화로 풀어야 하는데 , 이게 안되는 이유는 ?
“여야 모두 한전이 공기업인 이상 전기요금으로 생색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획재정부도 재정이 부담해야 할 짐을 한전에 떠넘긴다. 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려면 한전의 송배전은 별도 공사로 분리하고, 발전과 소매판매는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또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에 요금 규제와 소비자 보호를 맡겨야 한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취약계층이 힘들어지는데.
“취약계층 문제는 정부가 에너지 재난지원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영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정과 중소상공인에 68조5천억원을 지원했고, 올해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42조5천억원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2.1%에 달한다.”
재생에너지 부족에 기업들 RE100 난항…태양광 때리기 ‘정치탄압’ 흘러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기업들이 RE100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이행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수출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재생에너지에 우호적인 미국·유럽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기업들로서는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가 절박한데,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RE100을 이행하려면 태양광·풍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구글은 이미 5년 전에 RE100을 달성했는데, 한국 기업들이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주겠나? 재생에너지가 부족하면 외국자본도 한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런데 윤 정부의 ‘태양광 때리기’는 정치탄압 수준이다. 감사원과 국세청을 동원해서 1년 내내 지방자치단체를 감사하며 태양광에 대한 지원을 줄이라고 압박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이 8월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에너지 복합위기의 실상과 해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전력생산이 일정하지 않은) 간헐성 전원인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증가로 전력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해지면서, 경직적 전원인 대형원전의 발전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출력감발이나 재생에너지의 출력제한이 잦아지고 있다. 보수언론은 재생에너지 과잉생산, 송전망 투자 부족 탓으로 돌리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다. 지난해 태양광, 풍력발전의 공급비중은 미국이 15%, 유럽연합이 22%에 달했다. 세계평균도 12%로 원전의 9.2%를 추월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5.1%였다. 송배전망에 투자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도 수박 겉핥기식 논리다. 국내에서 원전과 태양광의 충돌은 지역적 쟁점과 전체 전력망 쟁점이 중첩돼 있다. 먼저 지역적 쟁점을 보면, 태양광이 영호남에서 늘어나고 있는데,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미 송전선로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밀집된 수도권에 추가로 건설하면 상호간섭 현상으로 수도권 전체가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전과 태양광 중에서 어디를 먼저 출력제한 할지가 관건으로 대두된다.”
―유럽은 이미 이 문제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독일과 영국의 태양광·풍력 발전은 국토의 북부에 집중되어 있지만, 전력소비 중심지는 남부에 있다. 처음에는 송전선로 건설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전국 단일 전기요금제를 지역별 송전혼잡비용과 전력망 운영비를 반영하는 차등요금제로 개편할 계획이다. 도매전기요금의 투명성을 높여서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옮기게 하고, 신규 재생에너지는 수요 중심지에 더 건설하라는 취지다.”
―지난 5 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제정돼 내년 6 월부터 시행된다 . 우리도 수도권은 전기가 비싸고, 발전설비가 위치한 비수도권은 싼 차등요금제를 실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는데 .
“그러려면 전기사업법 시행령도 바꿔야 한다. 한전이 수용할지 모르겠다.”
―유럽에서는 시간별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요금을 차등화하는 변동형 요금제로도 전력망의 유연성을 높인다는데.
“영국 소비자의 86%는 변동형 요금제를 쓴다. 특히 재생에너지 공급업체인 옥토퍼스(영국 전력업계 4위)는 가장 적극적으로 변동형 요금제를 운용한다. 태양광이 증가하는 점심에는 전기요금이 0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저녁에는 요금이 급격히 올라간다. 수요가 적고 풍력이 많은 새벽에는 마이너스 요금이 발생한다. 소비자들은 보상을 받으며 가전기기를 사용한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충돌과 관련한 전력망 쟁점은 무엇인가?
“세계 전력망 운영기관들은 가장 큰 발전기인 원전의 불시정지에 대비해 예비전력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에는 가스발전이 많이 가동되며, 이른바 운영예비력이 풍부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증가로 가스 발전이 줄면서 예비전력 비용이 계속 늘어난다. 유럽에서는 여러 나라가 예비전력을 함께 나누어 준비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영국이나 한국처럼 고립된 전력계통에서는 비용이 너무 크다. 영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전력공급 비중이 40%를 넘어선 2020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는 봄, 여름 5개월동안 사이즈웰 원전을 50% 출력으로 운전했다. 원전 전용 비상발전기들을 가동하는 것보다 애초에 원전 출력을 줄여 정전위험을 줄이는 게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RE100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전력망 위험도 해결할 해법은 무엇인가?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은 출력을 대폭 줄여서 운전해야 한다. 국내처럼 고립된 전력망에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상극이어서, 동시에 늘릴 수 없다. ”
―하지만 윤 정부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낮췄고, 원전은 늘리겠다고 한다.
“지금 있는 원전도 제대로 가동 못하는데 뭐하러 새로 짓나? 정부의 태양광 때리기와 원전 올인 정책은 에너지 위기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분산시키고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RE100을 이행해야 할 기업들에는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라는 절망적인 메시지와 같다.”
한전적자가 탈원전 탓?…이명박 정부 장기계약 가스물량 부족 큰 영향
―최근 스웨덴은 탈원전 폐기를 발표했는데?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4개국은 하나의 전력망으로 묶여있는데, 모두 풍력 발전이 늘고 있다. 만약 스웨덴이 새로 원전이 늘리면 매일 출력감발을 해야 한다. 최근 스웨덴 정부 홈페이지에서 원전 10기 건설 계획이 돌연 사라졌다. 탈원전 폐기가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졸속으로 발표된 것 같다.”
―국내 보수언론은 독일이 탈원전 정책 때문에 에너지 위기가 심화했다고 주장하면서, 원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와 비교한다.
“프랑스 원전의 경쟁력은 하나의 모델로 여러 발전소를 반복 건설하면서 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원전이 냉각배관 균열이라는 동일한 결함이 발생해 동시에 가동을 멈추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전력 부족으로 프랑스의 도매전력가격이 급등하면서, 탈원전 국가인 독일보다 더 비싸졌다.”
―윤 정부는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책임을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린다.
“이명박 정부는 민자 석탄과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스발전 계획을 대폭 줄였다. 발전용 가스 수요 전망이 대폭 하향조정되고, 장기계약 가스 물량의 절대부족으로 이어졌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현물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가스를 대량으로 도입하면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확대됐다. 탈원전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탈원전으로 인한 손실이 문재인 정부 5년간 23조원(2030년까지는 총 47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는데.
“전제부터 잘못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부품의 내진설계 시험성적서까지 조작되고, 격납건물 콘크리트에 구멍이 났는데도 원전 건설과 가동을 허가했어야 한단 말인가? 지난해 프랑스에서 안전규제로 원전이 20기 이상 정지되며 도매전기가격이 폭등했고, 프랑스전력공사는 26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것도 프랑스의 탈원전 탓이라고 우길텐가?”
―한전이 위기 타개를 위해 할 일이 많은데, 신임 사장에 에너지 비전문가를 임명한다.
“한전 사장과 감사, 가스공사의 사장과 감사를 모두 낙마한 정치인 아니면 검찰 출신으로 채웠다. 전문경영인도 위기 극복이 어려운 상황인데, 한전의 파산을 앞당기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석광훈 박사는 누구?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국내의 대표적인 에너지 전문가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고, 원전 확대에 반대하는 소신파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국가 전력정책을 결정하는 전력정책심의회 민간위원을 그만뒀다. 윤석열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추진을 위해 ‘친원전파’로 교체했다는 분석이 많다.
2020년 영국 서식스대에서 한일 발전설비산업을 주제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환경운동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을 시작으로 원전 관련 국책기관인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원자력환경공단,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비상임 이사와 감사를 맡았다. 2021년부터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각계 전문가와 시민사회, 산업계, 정치권 등이 소속, 당적, 분야,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결성한 에너지전환 분야 오픈 플랫폼이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노영준 보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