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홈쇼핑 업계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송출 수수료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올해 송출 수수료를 둘러싼 양쪽의 협상이 잇따라 결렬되면서 일부 홈쇼핑 업체는 방송 송출을 중단하는 ‘블랙아웃’을 예고하고 나섰다. 홈쇼핑 업계는 “업황 부진으로 수익은 악화하는데, 송출수수료는 눈덩이처럼 불어 매출의 65%를 넘어선 상태라 더는 견디기 어렵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19일 홈쇼핑 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홈쇼핑은 “케이티스카이라이프와의 ‘프로그램 송출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2023년 10월20일부터 케이티스카이라이프 전 권역의 유료방송 서비스에서 라이브 방송이 송출 중단될 예정”이라고 방송 화면과 누리집 공지를 통해 18일 안내했다.
앞서 롯데홈쇼핑도 강남딜라이브와의 협상이 중단되자 자사 누리집을 통해 다음달 1일부터 강남딜라이브를 통한 홈쇼핑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씨제이(CJ)온스타일과 현대홈쇼핑은 엘지(LG)헬로비전에 대한 송출 중단도 결정했으나 일단 협상을 재개하고 다시 줄다리기에 나섰다.
두 업계 간 갈등에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송출수수료가 자리하고 있다. 송출수수료는 홈쇼핑업체가 유료방송사업자(아이피티브이·위성방송·케이블티브이)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홈쇼핑 업계는 출범 초기부터 시청률이 높은 지상파와 인접한 ‘황금채널’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까닭에 홈쇼핑 성장세가 정체기를 거쳐 침체기로 들어섰음에도 송출수수료는 매년 오르고 있다. 반면 송출 수수료는 유료방송사업자의 주 수입원 중 하나다.
황기섭 한국티브이홈쇼핑협회 실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방송 매출의 65.7% 수준에 달하는 송출수수료를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내고 있다”며 “송출수수료는 해마다 평균 8%씩 늘어 2012년 8670억원 수준에서 2022년 1조9065억원까지 눈덩이처럼 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홈쇼핑 업계 업황은 티브이 시청자 수 감소, 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 위축, 대형 이커머스와 라이브커머스 업체 등장에 따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 2분기 기준 롯데홈쇼핑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2% 줄었으며, 현대홈쇼핑은 2.9%, 씨제이(CJ)온스타일은 1.7%, 지에스(GS)샵은 12.5% 감소했다. 이에 롯데홈쇼핑은 최근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까지 단행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홈쇼핑 업계 한 관계자는 “홈쇼핑 업계의 매출 중 방송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0% 이하로 떨어졌다. (유료방송은) 오티티 등의 공세에 밀려 가입자가 줄고 있는데, 홈쇼핑 송출수수료에 기대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케이블티브이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 업계가 올해 거대 통신3사(아이피티브이)보다 힘이 약한 케이블 수수료를 줄이면서 갈등이 빚어진 측면이 있다”며 “협상이 난항이라도 블랙아웃을 선언하는 것은 업계 전체가 공멸할 수 있는 자해행위인 만큼, 성실한 협상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이커머스나 라이브방송 사업자 등과 달리 홈쇼핑에만 각종 규제를 하고 있는데, 시대에 맞게 이를 풀어주는 등 정책적 뒷받침을 해줘야 업계 전체가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마다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 ‘홈쇼핑 방송 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상호 협의로 수수료 산정 기준을 결정하도록 중재한 바 있다. 또 양쪽 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갈등 해결 기구인 ‘대가검증협의체’를 운영하도록 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도, 대가검증협의체도 강제적 조정 기능은 없어 사실상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또다른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매출액, 가입자 수와 그 외 상호 합의하는 지표 등을 기준으로 하는데, 그 외 지표를 놓고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며 “대가검증협의체는 송출수수료 수준을 정하는 것이 아닌 협상에 불합리한 점이 있는지를 살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방송중단은 시청권 침해’라는 논리를 펴면서도 불합리한 송출수수료는 사기업 간의 문제라며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것은 모순”이라며 “최저임금 산정처럼 적절한 기준을 통해 상·하한선 또는 중간값이라도 정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방송중단을 우려한 과기정통부는 최근 “송출수수료 협상 중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정부의 중재안을 따르겠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각 업계 협회를 통해 회원사에 전달하고 분쟁중재위원회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중재안을 제시하는 대신 양사가 제안한 인상률 중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1개사의 제안을 분쟁중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방안(엠엘비·MLB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송출수수료 결정은 시장 자율원칙에 맡긴다는 것이 원칙이다. 부처에서는 불공정한 상황이 있었는지를 살피고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현재 논의되는 분쟁조정위 결정 방식은 송출중단으로 인한 소비자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양쪽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채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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