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지표는 수익성·안정성·성장성으로 측정되는데 은행산업의 재무지표는 국가의 제도적 지원과 빚을 두려워하는 한국의 풍토 덕분에 대부분 안정적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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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해마다 국내 시중은행 희망퇴직자가 2천~3천 명에 이른다. 최대 36개월 치 퇴직위로금에 자녀학자금과 재취업지원금(3천만~6천만원)을 합쳐 부지점장 급이면 약 5억원(일반퇴직금 포함)가량 받는다고 한다. 은행마다 최근 사상 최대수익을 거두고 있어 ‘불가피한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있다. 거액 퇴직위로금을 주면서 희망퇴직을 받는 물질적 기반은 무엇일까?
기업가치 지표는 수익성·안정성·성장성으로 측정되는데 은행산업의 재무지표는 대부분 안정적이다. 경기변동사이클 위험이 있지만 은행 자산은 각종 대출 담보와 상환보증·예금자보호 제도로 방어되고 보장받는다. 22년 동안(2001~2022년)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의 합산 연간 영업수익(이자수익과 수수료수익)은 2001년 17.8조원에서 2022년 170.7조원으로 증가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168.0조원)과 2009년(113.6조원)에도 크게 증가했고, 2021년(99.2조원)에 견줘 금리가 급등한 2022년에는 170.7조원으로 늘었다. 4대 시중은행의 자산총계는 1938조원(2022년 말)이다.
일반 제조·서비스 기업이 영업적자를 내던 금융위기 때도 4대 시중은행의 합산 영업이익(영업수익-영업비용)은 2008년 4.1조원, 2009년 2.9조원에 달했다. 4대 시중은행의 영업이익 합산액은 2017년(9.0조원)부터 급증해 2018년 10.9조원, 2019년 11.3조원, 2020년 10.2조원, 2021년 12.7조원, 2022년 15.3조원으로 증가했다. 몇몇 거대 수출기업을 제외하면, 석달 영업(분기)에 벌어들이는 이익이 1조원대인 기업을 제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 재무지표가 안정적인 기초에는 국민경제에서 수행하는 은행 업무(효율적인 자금중개와 자원배분, 지급결제 담당)를 고려해 민간자본 은행의 영업을 다방면에서 지원·보장해주는 ‘국가의 역할’이 있다. 은행업 진입제한과 면허제, 예대금리마진 합법화 등이 그것인데, ‘경제주체들(기업·가계·정부)의 투자와 소비, 고용·소득 창출에 기여한다’는 은행에 대한 기대가 정책의 근거다.
그런데 국내 은행의 수익성 지표는 ‘남의 빚을 두려워하는’ 한국인의 의식 풍토가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우리 국민의 장기 주택담보대출상품 상환 기간은 평균 7.5년이다. 소득이 생기면 우선 은행 빚 갚는 데 쓰는 ‘빚 문화’다. 금융전문지 <더 뱅커>(The Banker)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세계 100개 주요 은행의 평균 부실대출비율(총대출 잔액 중 90일 이상 연체된 부실대출액 비율)은 3.26%이다. 이 100대 은행에 포함된 한국 6개 대형은행(KB·산업은행·신한·우리·하나·농협)은 1.46%로 훨씬 낮다. 평균자산 규모가 우리나라 은행들과 유사한 37개 은행(미국·스위스·이탈리아·독일·중국·캐나다·싱가포르 등)의 평균 부실대출비율은 3.94%다.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경제가 추세적으로 장기 정체에 빠져들어도 은행이 적자를 낸 해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경제에서 물가·성장·소득·금리가 장기 변동할 때 특징 시기에 ‘그레이트’(Great)를 흔히 붙여왔다. 대공황기(The Great Depression), (물가)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 (소득평등의) 대압착기(The Great Compression), (소득·고용의) 대수렴기(The Great Convergence)와 대발산기(The Great Divergence) 등이다. 이와 달리 경기변동과 흥망을 거의 타지 않는 은행산업도 또 다른 의미에서 위대한 은행(The Great Banks)으로 불릴만 하다.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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