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8일 오후 9시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숨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에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에서 배수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하층,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는 저소득층에 공공임대주택과 이사비를 지원하는 ‘주거상향 지원’ 사업의 모호한 지원 대상자 선정 지침을 개선해 사각지대를 좁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상자 선정 지침에서 ‘재해 우려 주택’이나 ‘최저주거기준’ 같은 단서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1일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최근 펴낸 ‘국토정책 브리프’를 보면, 이길제 부연구위원 등 연구진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상향 지원사업 강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재해 우려 주택’과 모호한 대상자 선정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현행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국토교통부 훈령)에 따른 사업대상자인 ‘홍수, 호우 등 재해 우려로 인해 이주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하층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 조항이 대표적이다. 재해 우려는 실존 여부와 정도를 판단 또는 확인하는 것이 어렵고, 되레 대상자 사각지대만 넓힌다며, ‘홍수·호우 등 재해 우려’란 단서조항을 삭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가정 폭력 피해자, 출산 예정인 미혼모 등 긴급한 주거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란 조항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실이혼 관계인데도 법상 혼인 상태라 미혼모로 분류되지 않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아동가구’ 조항에서도 ‘최저주거기준’이란 단서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제안도 이어졌다.
대상자 사각지대를 좁히는 지침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주거상향 지원 사업의 대상자는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기존 업무 지침상 주거상향 사업대상은 약 18만가구이나, 단서조항 삭제 등 지침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대상자에 12만9천가구가 추가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매입임대주택은 지원단가를 호당 1억6천만원으로 가정하고, 전세임대주택은 호당 9300만원으로 가정해 산출할 경우, 정부 목표대로 한해 1만호를 주거취약층에 공급한다면 연간 12조2650억원이 소요된다.
연구진은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부족해 입주 신청 뒤 대기기간이 길어지고, 낮은 품질의 임대주택이 공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그러면서 “주거상향 지원사업은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이동을 통해 주거수준을 단기간에 직접 향상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인 주거 환경 보장을 위해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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