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데 아이폰을 쓰세요?” 통화 녹음 기능이 요긴한 직업 중 하나인 기자들이 아이폰을 쓰는 경우 자주 듣는 말이다. 통화 녹음 기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폰(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는 스마트폰)과 달리, 아이폰에는 애플의 프라이버시 보호 정책에 따라 통화 녹음 기능이 없다. 아이폰을 쓸 때도 통화 내용 녹음은 물론 녹음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인공지능(AI) 전화’ 출시에 기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는 ‘웃픈’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26일 에스케이텔레콤(SKT)이 출시한 인공지능 전화 서비스 ‘에이닷(A.) 전화’를 사용해 통화를 마무리하자 1초도 되지않아 통화 내용이 녹음되고, 요약되고, 말풍선 형태로 기록됐다.
■ 아이폰서도 통화내용 녹음·요약되는 ‘에이닷 전화’
“네, 그럼 그 때 뵙겠습니다!” 지난 26일 에스케이텔레콤 인공지능 전화 서비스 ‘에이닷(A.) 전화’를 써봤다. 1초도 안돼 방금 한 통화 기록과 함께 ‘한 줄 요약’이 떴다. ‘을지로 맛집에서 만나기로 결정.’ 해당 기록을 클릭하자, 내가 상대방과 나눈 통화 내용이 말풍선 형식으로 펼쳐진다.
통화 내용은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다. 음질도 좋다. 특정 대목만 골라 들을 수도 있다. 해당 대목 말풍선을 누르면, 그 부분 통화 음성이 재생된다. 건별 전체 삭제는 가능하지만, 부분 삭제는 안된다. 통화 중 “팀장님! 담배 한 대 하시죠”라고 한 말을 지우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앞서 에스케이텔레콤은 지난 24일 인공지능 앱 ‘에이닷’에 전화 기능을 추가했다. ‘아이폰도 통화 녹음된다’는 정보에 에이닷 전화 앱은 출시 당일부터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분야 내려받기(다운로드) 1위에 올랐다.
에이닷 전화와 아이폰 통화 녹음 기능에 대한 관심은 검색어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에이닷 전화 출시 이틀 뒤인 26일, ‘에이닷 통화 녹음 방법’, ‘에이닷 사용법’, ‘에스케이티(SKT) 요금제’ 같은 검색어가 구글 트렌드 ‘급등 검색어’로 집계됐다.
지난 26일 에스케이텔레콤(SKT)이 출시한 인공지능 전화 서비스 ‘에이닷(A.) 전화’를 사용해 통화를 마무리하자 1초도 되지않아 통화 내용이 녹음되고 ‘한 줄 요약’이 떴다. “을지로 맛집에서 만나기로 결정.”
에이닷 전화는 일반 전화를 모바일 앱으로 우회시켜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아이폰에서도 통화 녹음이 가능한 이유다. 데이터 소진을 우려해 와이파이(무선 인터넷)가 되는 곳을 찾을 필요도 없다. 통화내용 요약은 오픈에이아이(OpenAI)의 챗지피티(ChatGPT)가 한다.
사용해본 에이닷 전화는 새롭고 편리했다. 통화 중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이야기하니 인공지능이 해당 전화번호를 저장하겠냐고 묻는다. ‘을지로 맛집’에 갈 날짜를 논의하며 “11월25일로 하자”는 상대방에게 “12월5일로 하자”고 제안했더니, 두 말풍선 아래 모두 ‘해당 일정을 캘린더(달력)에 생성하겠냐’고 뜬다.
이용 절차도 간단하다. 에이닷 앱을 내려받은 뒤 ‘전화 서비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약관에 동의하면 에이닷 전화가 활성화된다. 그 때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에이닷 전화로 받아진다. 상대가 갑자기 내밀한 이야기를 시작해 아차 하고 녹음 기능을 꺼보려고 해도 통화 중에는 안된다. 통화 녹음 파일과 통화 내용 속 전화번호, 일정, 계좌번호 등 정보는 1년 동안 이용자 단말기에 보관된다.
■ SKT 가입자 통화, 어딘가에 반드시 남는다
부작용과 남용 가능성도 있다. 우선 통화 상대는 통화내용이 녹음되고, 문자 기록으로 남겨진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통화내용 분석을 위해 데이터가 제3자인 에스케이텔레콤으로 잠깐 보내지는데, 통화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점, 통화 내용에 제3자의 개인정보가 섞여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생체정보에 해당하는 통화자 목소리 데이터 무단 수집 논란도 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에 관한 일치된 규칙의 기반 규정’에는 법 집행기관이 공개된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원격 생체인식을 하는 경우를 ‘금지 인공지능’으로 규정했다”며 “음성인식이 생체인식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개인정보인 점, 에스케이텔레콤이 기간통신사업자로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점 등을 생각할 때 신기술의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한다는 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통신비밀 보호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에스케이텔레콤 가입자와 한 통화 내용은 녹음파일 또는 텍스트 형태로 남는다. 정보·수사기관의 사업자 서버 내지 스마트폰 압수수색 과정에서 엉뚱한 이들의 통화내용까지 덩달아 들여다보게 되는 상황도 예상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