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사고의 무단횡단자”
미켈란젤로, 돈키호테, 봉이 김선달, 희대의 사기꾼….
아직 벤처산업 개념이 채 정립되기 전인 90년대초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한 차지혁(48)씨가 돌아왔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재기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1990년 자본금 2만3000원으로 자동차 관리업체 ‘트리피아’를 설립해 그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됐다. 그의 5부작 자전적 이야기 <키재기>는 2백만부 이상 팔렸다. 그리그 1992년 어느날 사라졌다. 트리피아가 부도나 검찰에 구속된 것이다. 만 6년여 옥살이 끝에 1999년 출소한 차씨는 벤처기업 미다스칸을 설립했다. 그러나 2001년 과대광고 및 사기공모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90년대 초 트리피아로 1500억 대박
2년만에 부도로 구속…‘사기꾼’ 오명
크레비즈 연구소 통해 화려한 제기 꿈꿔 그는 “30대 초중반, 꿈이 너무 커서 추방 당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창의력은 누구도 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자유사고의 무단 횡단자’라며 거침없다. “IT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 중반, 90년대초 통화 연결음(컬러링)과 유무선 통합 도메인 사업, 휴대폰을 통한 데이터 통신 사업 등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저를 두고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한 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부끄럽거나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당시 제안했던 사업들이 ‘대박 컨텐츠’로 인정 받고, 많은 수혜를 받은 기업들이 생겨나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직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92년 트리피아 부도건으로 실제 기소된 금액은 2억4천여만원. 나머지는 1, 2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한번 각인돼 버린 ‘사기꾼’ 오명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가 1999년 평화은행과 손 잡고 미다스칸이라는 카드법인을 설립해 인터넷으로 70배 공모에 성공해 화려하게 재기하려는 순간 이번엔 금융감독원이 그를 고발했다. 혐의는 인터넷 사기공모, 과대광고. 검찰 수사가 다시 1년여 이어졌다. 다시 무혐의 판정. 하지만 회사는 파산직전, ‘역시 차지혁은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부정적 인식만 깊어졌다. 그리고 6년, 그가 이달 중순 몇몇 언론에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알리는 양면 의견광고를 냈다.
1월25일 설립한 ‘차지혁 크레비즈 연구소’를 통해 23번째 출사표를 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연구소를 통해 그간 개발한 100여개의 크레비즈 모델을 개인 및 기업에 제공할 것이라며 자신에 차있다. 쌍방향 멀티 발신자 번호표시 서비스, 사생활 보호 콘텐츠인 프라이버시 콜서비스 등이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는 “꿈꾸는 이들의 깃발이 되고, 희망이 되고 빽이 되는 게 가장 큰 꿈”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지닌 창조적 재능과 실천 행위를 시대와 국민을 위해 완전 연소될 때까지 낭비하고 싶다”고도 했다. 광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IQ 174의 아이디어맨이 재기에 성공할지 세간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이제 시대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 가슴엔 새로운 길을 내려는 열정이 꿈틀거린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실패한 것일 수 없다.” 글·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사진·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2년만에 부도로 구속…‘사기꾼’ 오명
크레비즈 연구소 통해 화려한 제기 꿈꿔 그는 “30대 초중반, 꿈이 너무 커서 추방 당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창의력은 누구도 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자유사고의 무단 횡단자’라며 거침없다. “IT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80년대 중반, 90년대초 통화 연결음(컬러링)과 유무선 통합 도메인 사업, 휴대폰을 통한 데이터 통신 사업 등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저를 두고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한 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부끄럽거나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당시 제안했던 사업들이 ‘대박 컨텐츠’로 인정 받고, 많은 수혜를 받은 기업들이 생겨나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직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92년 트리피아 부도건으로 실제 기소된 금액은 2억4천여만원. 나머지는 1, 2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한번 각인돼 버린 ‘사기꾼’ 오명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가 1999년 평화은행과 손 잡고 미다스칸이라는 카드법인을 설립해 인터넷으로 70배 공모에 성공해 화려하게 재기하려는 순간 이번엔 금융감독원이 그를 고발했다. 혐의는 인터넷 사기공모, 과대광고. 검찰 수사가 다시 1년여 이어졌다. 다시 무혐의 판정. 하지만 회사는 파산직전, ‘역시 차지혁은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부정적 인식만 깊어졌다. 그리고 6년, 그가 이달 중순 몇몇 언론에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알리는 양면 의견광고를 냈다.
1월25일 설립한 ‘차지혁 크레비즈 연구소’를 통해 23번째 출사표를 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연구소를 통해 그간 개발한 100여개의 크레비즈 모델을 개인 및 기업에 제공할 것이라며 자신에 차있다. 쌍방향 멀티 발신자 번호표시 서비스, 사생활 보호 콘텐츠인 프라이버시 콜서비스 등이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는 “꿈꾸는 이들의 깃발이 되고, 희망이 되고 빽이 되는 게 가장 큰 꿈”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지닌 창조적 재능과 실천 행위를 시대와 국민을 위해 완전 연소될 때까지 낭비하고 싶다”고도 했다. 광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IQ 174의 아이디어맨이 재기에 성공할지 세간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이제 시대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 가슴엔 새로운 길을 내려는 열정이 꿈틀거린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실패한 것일 수 없다.” 글·이상기 기자 amigo@hani.co.kr 사진·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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